organizer53 2024. 2. 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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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청산없는 일본

  •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국이었지만, 종전 후 독일이 철저한 과거청산을 통해 나치즘의 과거를 극복한 반면, 일본은 과거 와의 진지한 대면을 회피함으로써 군국주의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일본이 돌아왔다.”  아베 신조 총리가 장담한 대로, 일본은 마침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돌아왔다. 아베 정권은  2015년 9월19일 새벽에 참의원 회의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안보법안’을 전격적으로 통과시킨 것이다, 미래의 역사는 이 날을 일본 군국주의가 부활한 날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 일본은 독일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까지도 식민지배의 과거에 대해 진정한 반성도 사과도 없으며, 역사를 왜곡하고, 전범을 추모하는 상식 이하의 행태를 멈추지 않고 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일본의 현재와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2.  일본 지도층의  과거사 사과발언

  • 일본의 과거사 사과 발언은 총리 자격으로는 지난 1983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일왕 자격으로는 1984년 9월 히로히토 전 일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최소 53차례로 집계됐습니다.

  • 일왕과 총리 입에서 나온 표현 가운데, 처음으로 '잘못'을 말했을 때는 1984년, 자신들의 행위를 '침략'이라고 첫 표현하고 '식민 지배'를 인정한 시기는 1993년입니다.
  • 1993년은 한일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사과가 많이 나왔습니다. 당시 일본 총리는 자민당이 아닌 연립 내각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였습니다. 그해 11월 호소카와 전 총리는 나아가 "창씨개명과 위안부, 징용 등의 여러 형태로 괴로움과 슬픔을 당한 것에 대해 가해자로서 마음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이는 선언적 의미의 사과가 아니라, 창씨개명과 위안부, 강제 징용 문제 등 세부적인 사안에 대한 사과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 같은 해 호소카와 총리는 일본 국회 연설에서도 "태평양 전쟁은 침략 행위"라고 발언했는데, 갑작스러운 사과 정국에 극우 단체의 반발도 커져 갔습니다. 침략 행위 발언에 불만을 품었던 한 우익 단체 회원은 도쿄 신주쿠의 한 호텔에서 총리를 향해 총을 겨눴다가 경찰에 의해 발각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암살 미수 사건은 한일 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 정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었습니다. 당시 선언은 양국 정상이 직접 서명했던, 일본 정부의 사죄를 처음으로 문서화 한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 1990년대 일본은 호소카와 전 총리의 사과와 함께,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 식민지배와 침략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사죄하는 '무라야마 담화'까지, 과거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긍정적인 신호들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8년 10월 8일,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함께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서명하고,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출처 : SBS 뉴스

 

3. 아베총리의  과거사 사과 발언과  역사 왜곡

  •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태평양 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적극적으로 강행하면서 주변국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독도와 역사 교과서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 이런 기조는 아베 신조 전 총리 재임 기간 강해졌습니다. 그래도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1년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순국한 독립운동가를 향해 참배하고,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걸 공식화했지만, 아베 전 총리는 그간 일본의 사과를 부정하는 역사 왜곡 발언을 자주 이어갔습니다. 한국 언론은 이를 '망언'이라고 불렀습니다.
  • 물론, 아베 전 총리가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팀이 집계한 아베 전 총리의 공식적인 사과 표현은 19차례였습니다. 재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사과나 유감 발언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총리 자격의 공식적인 사과 발언과, 공식적인 역사 왜곡 발언이 동시 나오면서 늘 사과의 진정성이 의심 받았습니다. 가령,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불과 6달 뒤 계승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널뛰기를 했습니다.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부정하다가 한 달 만에 사과하고, 또 부정하며 민간 영역의 인신매매 피해자라고 말했다가 또 사과하고, 특히, 위안부 합의 이전 협의가 진행될 시기 사석에서 "내가 말했지? 기다리면 한국이 찾아올 거라고. 위안부 문제는 3억 엔이면 해결 돼"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큰 논란이 됐습니다. 불과 몇 달 새, 혹은 몇 년 새, 스스로의 사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쳇바퀴처럼 반복됐습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

 

4. 일본총리의  과거사 사과 발언 내용

 

 

 

 

 

 

5.  오늘날 한·일관계 악화의 최대 원인은 물론 과거사를 둘러싼 인식 차이

가.  한국 대중의 일반적인 입장을 정리하자면 

  •  한일기본조약으로 국가가 대표해서 청구권을 포기하고 일본 정부가 독립 축하금과 경제적 지원을 해줬지만 그것은 배상 차원의 문제이지 과거사를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닌데 일본 정치권이 이를 호도하고 있다.
  • 고노 요헤이의 고노 담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를 등 여러 차례 사과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손바닥 뒤집듯이 터져나오는 전범자 신격화와 여러 인사들의 망언, 고위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통해 이중적인 행동을 하고 사과와 완전히 모순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언제언제 사과 했지않냐"라고 얘기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독일 총리가 히틀러나 나치 고위 인사들에 참배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주변국에게 "이미 옛날에 여러번 사과했잖아?"라고 하면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 비록 과거사 청산의 모범 사례라는 독일도 아프리카 식민지들에 제국주의에 대한 배상은 일본보다 못한 것이 사실이나, 적어도 독일은 지역 평화를 두고 협력해야 할 인접국들에 대해서는 다시 독일이 팽창주의로 나갈 것이라는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철저한 역사 인식 교육과 반성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설령 일본이 제국주의에 대한 배상이라는 면에서 독일이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대한 것보다는 낫다 할지라도, 독일이 주변국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한국과 일본이 결국 동북아시아의 이웃나라인데다 서로에게 유의미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역 강국인 이상, '식민지'에 초점을 맞춘 기계적인 비교만을 근거로 일본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거사가 현재의 동북아시아 정세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에서 애써 눈을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 북한과 중국과의 문제와 그 위협에 대한 반응은 일본과 상관없는 별도의 문제이며 일본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에 대한 일에 관련없는 제 3국을 끌고들어오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물타기에 불과하다.

 

나.  일본 대중의 일반적인 입장을 정리하자면

  •  한일기본조약으로 국가가 대표해서 청구권을 포기하고 일본 정부가 독립 축하금과 경제적 지원을 해줬으며 그걸 피해자들에게 전달하지 않고 빼돌린 건 한국 정부인데 왜 일본에게 다시금 배상 해달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 고노 요헤이의 고노 담화 등으로 수십 년 동안 여러 차례 사과했는데 진정성이 없다고 하면 얼마나 사과해야 하나? 한국은 처음부터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있기나 한 것인가?
  • 물론 개인 차원에서의 망언, 야스쿠니 신사 참배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표현의 자유이고, 정부의 공식 입장은 변함이 없다. 심지어 아베 신조2기 시절에도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 간 담화등을 철회하라는 극우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담화들은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한국에서도 남침유도설, 천안함 피격 사건/왜곡 등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도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않는가?
  • 한국은 1945년에 끝난 일제강점기로 일본은 두고두고 비판하면서, 정작 6.25 전쟁을 일으킨 중국에는 미온적으로 반응한다.  일본은 적어도 전임 총리들이나 천황들의 몇 차례 사과와 물질적인 보상금도 있었지만, 중국에게는 그러한 보상도 받지 못한채 지금까지도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에는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일본에게만 주구장창 비난하는 한국의 과거사 대응은 감정적이며 이중적인 것이 아닌가?               

출처 : 나무위키  한일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