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체제 해소를 위한 현실적인 생각
1. 한반도의 구조적 현실
- 한반도는 분단 이전과 이후로 구조적으로 변화된 상태이다.
- 남북한 각각 독립적인 국가 체제를 확립했으며, 국민들은 이를 수용했다.
- 북한 체제를 남한 국민이 수용하거나, 반대로 남한 체제를 북한이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 한반도 분단은 냉전의 산물이지만, 그 기원은 조선 말기의 국제 외교문서에 등장한다.
-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분단이 불가피했다는 구조적 현실이 냉전 이전에도 존재했다.
2. 한반도 2국가론과 헌법의 충돌
- 한반도 2국가 체제는 국내외적으로 고착화된 현실이다.
- 문제는 헌법의 영토 조항(헌법 제3조)이 이 현실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 현재의 헌법 조항은 사실상 적용되지 않는 상태이며, 이를 ‘헌법의 침묵’ 또는 ‘어베이언스’라고 해석한다.
3. 남북 관계의 재정의
- 남북은 독립적인 국가로 평화 공존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 서로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사회적 교류와 통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 국경은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도록 개방하되, 화폐 통합이나 공동헌법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4. 냉전과 한국 정치
- 냉전 시기, 한국은 반공주의를 기초로 한 안보 체제를 구축했다.
- 한·미 동맹과 국가보안법은 ‘헌법 위의 헌법’으로 기능했다.
- 냉전이 한국 정치에 좌우 양쪽으로 한계선을 그어 정치적 대역폭을 좁혔다.
- 좌파 정치세력은 ‘빨갱이’로 낙인찍히며 배제됨.
- 우파는 반공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제약 속에서 작동함.
5. 냉전의 끝과 변화
- 1990년대 이후 소련 붕괴와 함께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 진보 정당의 등장, 국가보안법의 위상 약화, 불평등 증가 등 구조적 변화가 일어남.
- 보수는 종북 프레임 등을 통해 반공주의의 재활용을 시도했으나, 대중적 설득력은 약화되었다.
6. 한반도 평화체제의 모색
-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의 현실을 이해하고 평화체제 정착을 추진했다.
- 통일은 먼 미래의 목표로 두고, 당장의 목표는 평화로 설정했다.
- 정상회담에서는 민족주의적 담론보다 보편주의적 접근법을 택했다.
7. 국민 인식의 변화
- 통일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감소하고, 평화 선호도가 증가했다.
- 통일은 더 이상 민족적 목표가 아닌 평화체제의 선택적 수단으로 인식된다.
8. 북한 변수와 국내 정치
- 북한 변수는 여전히 한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만, 과거보다 약화된 상태이다.
- 냉전적 문법은 남아있으나, 이를 지탱할 국제 냉전체제가 사라짐에 따라 그 영향력은 감소했다.
9. 미래 전망
- 한반도 평화체제가 정착된다면, 냉전적 프레임에 의존했던 보수 정치의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 그러나 북·미 관계의 변화에 따라 평화체제가 흔들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한반도의 현실은 분단 이전과는 구조적으로 바뀌어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독자적 국가 체제를 제도화했고, 각자 구성원들이 그를 완전히 수용한 상태다. 지금 남한 국민들이 북한 체제를 일부라도 받아들이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나? 또, 냉전체제가 분단을 고착시킨 것은 맞지만, 분단이 냉전의 산물만은 아니다. 한반도 분단은 2차 세계대전 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의 합작품이기는 하지만, 한반도를 나눈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조선 말기부터 열강들의 외교문서에 등장한다. 지정학적 경계선이 불행히도 한반도 위를 지나간다. 이 구조적 현실은 냉전 이전에도 존재했다.
한반도 2국가론은 헌법과 충돌하는데?
문제를 세 층위로 구분해서 보는 것이 유용하겠다. 1층에는 한반도 2국가 체제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굳어졌다는 구조적 현실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장기적으로 굳어져왔다. 2층에는 사람들이 현실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문제가 있다. 지정학적 현실, 한국전쟁의 의미, 한반도 2국가 체제의 불가피성, 그런 것들을 인식하고 깨닫고 공공연하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현실과 인식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인식이 현실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3층에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 조문이 있다. 헌법 제3조 영토 조항(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 같은 것들인데, 문제는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현실에 헌법을 맞추나?
이런 경우에 정치학자들은 실질적으로 헌법의 효력이 정지했다고 해석한다. ‘헌법의 침묵’이라고도 하고 ‘어베이언스(중단)’라고도 하는데, 조문은 남아 있으나 실제로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영토 조항 같은 걸 지금까지 우리가 그렇게 해온 것이다. 적어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이후로는 영토 조항이 ‘어베이언스’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도 ‘어베이언스’의 한 과정일까?
정상회담 과정에서 나온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목표는 남북한 상호 체제 보장을 전제로 한다. 이 결론이 우리 내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냈다. 그러니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남북한 협상을 공론이 수용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2국가 체제가 실질적으로 합의됐다. 북한이 독립적 체제를 계속 보유하도록 인정한다는 ‘실질적인 개헌’이 일어났다. 정치학이 보는 헌법은 결국 정치적 권력의 법적 표현이다. 앞으로 남북 교류가 활발해져서 헌법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나 명백해지는 때가 오면 헌법 조문도 바꿔야 할 것이다.
한반도 2국가 체제에서 남북은 어떤 수준의 관계를 설정해야 할까?
남과 북이 각자 독립된 국가로 평화 공존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남북이 각자 갖고 있는 정치체제나 이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회와 경제의 교류와 통합이 상당히 진행되는 관계다.
국가 간 연합의 사례를 보면 국경, 화폐, 공동헌법 등의 문제가 걸려 있다.
국경은 오고 가는 게 자연스러운 정도로 개방되는 것이 좋겠다. 화폐 통합이나 공동헌법은 어려울 것이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 헌법을 일부라도 받아들인다는 것이 가능하겠나? 말도 안 된다. 북한 쪽에서도 당연히 마찬가지로 생각할 것이다. 이런 선에서 평화 공존과 경제 통합이 이루어지면 사회도 점점 자연스럽게 통합이 되고,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공통점이 늘어나는 그런 긴 과정을 거치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한두 세대 정도가 그런 경험을 쌓는다면, 그때는 남북관계를 또 어떻게 바꾸자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출 처 : 시사인 천관율 기자 2018.5.28 최장집 교수와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