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한민국 정치와 민주주의 바로 알기/6-2. 민주주의를 바로 알자

6-2-4. 대의제는 민주주의인가, 변형된 엘리트주의인가?

organizer53 2024. 3. 13. 12:29

1. 정치체제의 2가지 측면인 민주주의와 엘리트주의

  • 정치체제의 두 측면인 민주주의와 엘리트주의를 구분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정치 방식이고, 엘리트주의 혹은 독재주의는 소수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정치 방식이다. 
  • 민주주의는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검증된 정치체제이고,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많은 이의 희생을 대가로 얻은 값진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특정 정치체제는 선이고 다른 정치체제는 악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2. 대의 민주주의 제도로 인한 엘리트주의  탄생

  •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제의 형태를 띠고 있다. 모든 시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전문가 집단이 시민의 의견을 대리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의제는 민주주의인가, 변형된  엘리트주의인가? 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쟁 중이지만, 우리는 우선 대의제도 민주주의에 포함하려 한다. 엘리트주의 혹은 독재주의는 권력의 근거를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는 반면 대의제는 권력의 근거가 시민, 대중에게 있기 때문이다. 
  • 민주주의의 장점은 시민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확인하므로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종합할 수 있다는 매력을 갖는다. 물론 현대 민주주의가 대의제라면 실제로는 개개인의 의사가 개별 사안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타당한 비판이다. 각각의 시민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시민의 뜻이 개별 사안마다 반영될 수는 없다. 쉽게 말해서 국가 정책을 결정할 때, 그 결정은 국회의원들끼리 알아서 하지, 당신에게 하나하나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 다만 거시적 관점에서는 당신의 의사가 정책 결정에 하나하나 반영된 것이나 다름없다. 보수와 진보, 당신이 보수 정당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대리자 한명을 뽑아준 것이 아니라 경제체제로서의 신자유주의, 시장의 자유 확대, 세금 인하, 복지 축소,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 국가 경제의 성장, 치열한 경쟁을 선택한 것이다. 
  • 마찬가지로 당신이 진보 정당에 투표한다면, 그것은 진보 정치인 한 명을 선출한 것이 아니라 후기 자본주의, 정부의 개입 확대, 세금 인상, 복지 확대,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 빈부격차 해소, 경쟁 지양 및 협력적 분위기 형성을 선택한 것이다.
  • 민주주의의 본질인 투표는 반장을 뽑듯이 정치인 한 명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며, 직접적으로 내가 살아갈 내일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대의원도 사람인지라 개인의 취향과 판단, 신념을 고려해서 입법안을 제출하겠지만, 한국은 정당정치이기 때문에 개인의 정치적 견해보다는 정당의 방향성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단순하게 이야기해본다면, 투표를 하기 위해 개별 정치인의 삶을 알아보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 그 대신 현시점에서 나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당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지 구분할 줄 아는 시야를 갖는 것이 자신과 사회 전체를 위해 더 도움이 된다. 자신이 살아갈 미래를 타인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선택하는 체제. 이 체제가 민주주의이고, 이러한 민주주의의 이념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이상적이고 감동적인 체제가 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측면으로 넘어오면 부정적인 면을 너무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엘리트주의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를 전제한다. 첫 번째는 사회가 권력과 능력을 가진 엘리트와 이를 가지지 못한 일반 대중으로 구분되는 것이 사실이며, 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렇게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대중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기분은 좀 나쁘지만, 어쩌면 구체적인 현실에 부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엘리트는 자신의 잠재력과 가치를 전면적으로 실현한 개인적 능력과 환경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반면 일반 대중은 개인적으로 잠재 가치를 갖지 못했거나 처해진 환경상 능력을 펼칠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그렇다고 할 때, 능력과 여건을 갖춘 엘리트에게 사회를 맡기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가시키고, 이것이 결국 대중 전체의 이익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현대 사회도 엘리트주의 사회처럼 보인다. 실제로 사회는 능력 있고 학벌 좋은 소수의 정치, 사회, 경제엘리트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정치 엘리트로서 사회의 모든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 교육을 통해 개인이 민주시민으로 양성되는 것은 잘된 일이겠지만, 그로 인해 엘리트주의나 독재주의는 잘못된 체제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수에 의한 정치체제도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만약 소수의 권력자가 지혜롭고 뛰어난 까닭에 대중보다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판단할 수 있다면 말이다. 현대의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결정을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사회의 성장과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다만 독재주의, 엘리트주의는 치명적인 한계를 갖는다. 그것은 잘 알려진 것처럼 소수에 의한 정치는 최고 권력자를 쉽게 타락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불완전하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채택되고 유지되는 것은 인류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소수의 독재가 얼마나 치명적인 문제와 한계를 드러내는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고대와 중세의 절대군주 아래서 백성은 노예였으며, 근현대에 등장한 독재자들, 독일의 히틀러,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세습적 독재자들은 개인의 실책과 부패로 민중을 폭력적인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

3. 민주주의의  단점

가. 민주주의의 첫 번째 문제점 :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독재자

  •  A사회의 사람들은 달변가들을 신뢰하고, 결국 그들을 대표로 선출한다. 물론 소수의 달변가들이 기대만큼 뛰어나고 정의로우며 덕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신념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혹은 이들이 사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문제는 커진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소수의 달변가들은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자신이 믿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차피 명분이 있고, 설명만 잘한다면 판단 능력이 결여된 대중은 다수의 분위기에 편승해 계속해서 자신들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첫 번째 문제점이 발생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독재자'가 그것이다.
  • A사회의 독재는 어리석은 다수가 독재자를 선출하는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다. 그는 쿠데타를 통해 독재자가 된 것이 아니다.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통해 선출되었고, 이후에 스스로 총리와 대통령의 지위를 겸임하는 총통이 됨으로써 독재자가 되었다. 물론 당시의 독일인이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독일인은 스스로의 합리적, 윤리적 판단을 보류했고, 집단의 이기심에 판단을 양도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했다. 그들은 대중 전체라는 분위기에 숨어 암묵적으로 독재자의 탄생에 동조했던 것이다.

 

나. 민주주의의 두 번째 문제점 : 다수의 독재

  •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B사회의 구성원들은 사회 전체의 이익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저소득자나 소외계층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들은 경쟁에서 도태된 결과이므로 그들의 처지는 어떤 면에서는 정당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B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재산과 부를 지켜줄 수 있는 대리자를 희망한다. 일단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줄 것 같은 대리인은 명쾌하게 거부한다. 이 사회에서는 부자가 되는 세상, 성장하는 경제, 세금 인하를 약속하는 대리인만이 다수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다.
  •  경제 성장과 부를 추종하는 다수에 의해 경쟁에서 소외된 소수의 다른 견해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민주주의의 두 번째 문제점이 발생한다. '다수의 독재'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독재를 만들어낸다는 문제점을 갖는다. 다만 그 독재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 B사회의 독재는 독재자에 의한 독재가 아니라 '다수에 의한 독재의 상황이다. B사회에서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들은 하나의 정치 세력처럼 행동한다. 경제 성장과 발전 외의 정치 담론은 거부하고, 세금 인하나 규제 완화처럼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소수에게 발생하는 인권 침해나 권리 박탈은 고려되지 않는다. 반대로 소외된 소수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그 사람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다른 의도를 가진 위선자로 치부된다. B사회처럼 물질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다수의 개인은 물질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독재 정부를 낳는다.  그리고 이 사회는 다시 물질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개인을 키워낸다. 이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 아이러니하게도 독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은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측면만을 고려할 때 거의 필연으로 보인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측면과 동시에 내용적 측면이 보강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형식적 다수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신이라는 내용적 측면까지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과 공정한 절차가 보장되고, 각 구성원이 소수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관용의 태도가 전제되어야만 이상적인 형태의 민주주의가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 엘리트주의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를 전제한다. 첫 번째는 사회가 권력과 능력을 가진 엘리트와 이를 가지지 못한 일반 대중으로 구분되는 것이 사실이며, 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렇게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대중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기분은 좀 나쁘지만, 어쩌면 구체적인 현실에 부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엘리트는 자신의 잠재력과 가치를 전면적으로 실현한 개인적 능력과 환경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반면 일반 대중은 개인적으로 잠재 가치를 갖지 못했거나 처해진 환경상 능력을 펼칠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그렇다고 할 때, 능력과 여건을 갖춘 엘리트에게 사회를 맡기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가시키고, 이것이 결국 대중 전체의 이익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현대 사회도 엘리트주의 사회처럼 보인다. 실제로 사회는 능력 있고 학벌 좋은 소수의 정치, 사회, 경제엘리트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정치 엘리트로서 사회의 모든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 물론 이러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와 근본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누구로부터 얻는지에 대한 차이다. 민주주의는 구성원 중에 엘리트가 존재하는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선출되는 정치권력의 정당성이 시민으로 부터 나온다. 시민에게 특정 정치인을 대리자로 뽑거나 뽑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반면 엘리트주의는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통치자의 정당성이 시민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엘리트의 정치적 정당성은 엘리트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엘리트주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대중은 무기력하고 비합리적인 존재여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대리자를 선출할 능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손에 대리
    자를 선출할 권한을 넘겨주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출 처 :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