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MY 시사 특강/20-3. 유튜브 시사 특강

친일의 역사 1편 - 이승만이 부활시킨 친일파, 박정희의 충복이 되고 자유한국당의 스승이 된다.

organizer53 2025. 3. 1. 10:00

자유 한국당 DNA: 친일의 역사 1편 정리

1. 서론

본 영상은 한국 보수정당의 친일 역사를 다루며,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1. 해방 후부터 박정희 정권까지 - 친일 세력들이 살아남고 사회 지배층이 된 시기
  2. 군사정권(전두환~노태우 시기) - 극우 세력과 결탁하여 영향력을 유지한 시기
  3. 1990년대 이후 -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친일 사상이 정당화되는 시기

이번 1편에서는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이어지는 시기를 다루며, 친일파들이 어떻게 부활하고 사회 지배층이 되었는지 살펴본다.

 

2. 해방 직후 친일파들의 생존 전략

해방 직후 일제에 부역했던 관료들은 사회적으로 청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미군정의 정책으로 그들은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자리를 유지하게 된다.

1) 미군정의 포고령 (1945년 9월)

  • 맥아더가 발표한 포고령 제2조:
    “일제 관료와 공무원, 경찰,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기존의 역할을 계속 수행할 것.”
  • 이는 일제 부역자들이 계속해서 공직을 유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 반탁운동을 통한 이미지 변신

  •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한반도의 임시정부 수립 후 최대 5년간 신탁통치를 실시하는 방안이 결정됨.
  • 그러나 **언론(동아일보 등)이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은 즉시 독립을 원한다"**는 오보를 냄.
  • 여론은 즉각 신탁통치 반대로 돌아섰고, 친일파들은 반탁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반공 애국자"로 변신했다.

3) 한민당과 친일파의 결합

  • 해방 직후 일본과 협력했던 부유층과 관료들이 모여 한민당을 창당.
  • 한민당은 반탁운동의 핵심 세력이 되었고, 이를 대변한 신문이 동아일보였다.
  • 한민당의 핵심 인물 김성수(동아일보 창립자)는 후에 대한민국 부통령이 됨.

 

3. 친일파 청산 시도와 실패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친일파 청산을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었으나 결국 무력화된다.

1)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출범

  • 1948년 9월 제헌국회에서 반민족행위자 처벌 특별법 제정.
  • 주요 처벌 조항:
    • 적극적 친일 행위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제국의회 의원이 된 자는 무기징역
    • 독립운동가 및 가족을 박해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하 징역
  • 반민특위가 1949년 1월부터 활동을 개시, 4개월간 300여 명을 체포.

2) 친일 경찰과 이승만 정권의 반격

  • 1949년 6월, 대표적 친일 경찰 노덕술 체포 이후 경찰 조직이 반발.
  • 이승만은 **"친일파 청산은 공산당을 돕는 일"**이라며 반민특위 해체를 요구.
  • 1949년 6월 6일, 친일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고 특경대를 강제 해산.
  • 이후 반민특위는 무력화되었고, 친일파들은 처벌을 피해 권력을 유지.

 

4. 한국군의 형성과 친일 군인들의 부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시기에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 인사들이 한국군을 장악하게 된다.

1) 군사영어학교 출신들의 득세

  • 미군정은 한국군을 만들기 위해 영어가 가능한 군인을 선발.
  • 군사영어학교 출신 110여 명 중 대다수가 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
  • 이들은 이후 한국군의 핵심 수뇌부가 됨.

2) 대표적 인물 - 백선엽과 정일권

① 백선엽

  • 만주국 봉천군관학교 출신,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 토벌에 참여.
  •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가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
  • 6.25 전쟁에서 공을 세워 유명해졌고, 미군과의 협력으로 고속 승진.
  • 이후 프랑스, 네덜란드 대사 및 교통부 장관을 역임.
  • 강남 일대 부동산 투자로 거부가 됨.

② 정일권

  • 일본 육사 출신, 일본군 헌병대 장교.
  •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를 거쳐 한국군 총참모장, 육군 준장으로 승진.
  • 이후 외교관(주미 대사, 주프랑스 대사) 및 국무총리를 역임.
  •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공화당 핵심 정치인으로 성장.

 

5. 친일 관료들의 부활과 정계 진출

친일파 출신 관료들은 한국 정부 수립 후에도 주요 직책을 맡으며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1) 홍진기 (중앙일보 설립자)

  • 일제 강점기 법관 출신,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됨.
  • 이승만 정권에서 법무부장관, 내무부장관 역임.
  • 4.19 혁명 당시 시위대 발포 명령을 내림.
  • 이후 삼성 이병철과 친분을 쌓아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을 창립.

2) 신현확

  • 일제 강점기 일본 상공성 근무, 군수성 관리.
  • 해방 후 박정희 정권에서 경제기획원 장관, 부총리를 역임.
  • 전두환 정권에서 국무총리 및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 이후 삼성물산 회장으로 기업계에서도 영향력 행사.

 

6. 결론

  •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이 실패하며, 친일 세력들은 보수정당과 결합하여 사회 지배층이 됨.
  • 이승만 정권에서 "반탁운동"과 "반공주의"를 이용해 애국자로 변신.
  • 군사정권(박정희~전두환) 시기에 이들은 더욱 공고한 권력층으로 자리 잡음.
  • 지금의 보수정당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기반을 형성.
  • 최근 보수정당이 이승만과 박정희를 재평가하며 친일 행적을 옹호하는 경향이 보이는 것도 그들의 역사적 뿌리와 무관하지 않음.

 

 

출  처 :  ChatGPT,  유튜브  곰곰이  https://youtu.be/qN14AXjNeqA?si=t4PVQu5Xz2Qkg-s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