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백낙청 한반도평화포럼 공동 이사장이 2016년 2월 19일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한 야권 주요 인사들의 발언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평화·통일의 시대적 사명을 통감하지 못하는 야당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에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북한 궤멸’ 발언,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대해 “필연적”이며 “비난만 할 수는 없다”는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위원장의 발언, 이상돈 국민의당 공동선대위원장의 “햇볕정책 실패” 발언 등을 문제 삼았다. 야당이 “정부의 왜곡과 허위”를 “수수방관”하는 수준을 넘어 “오히려 그를 합리화해 주는 발언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통일운동 진영을 대표하는 두 원로가 여당이 아닌 야당을 직접 비판하고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야당의 대북 인식 변화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보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과 무능 외교가 한반도 평화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이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비호하는 발언을 일삼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야당의 적극적인 견제가 없다면 극우 강경파의 전쟁불사론도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안보 수구 세력이 야당까지 장악해 가는 모습은 참으로 불길하다.
김종인, 이수혁, 이상돈—이들은 모두 야당이 ‘성공적인 영입’의 사례로 치켜세우는 인사들이다. 야당이 경쟁적으로 영입한 인사들이 예외 없이 평화·통일 문제에서 보수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은 예사롭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이들의 ‘불길한’ 발언에 대해 야당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더 불길하다. 야당의 ‘새로운 구세주들’이 구시대적 냉전주의자라는 사실은 한국 정치의 앞날과 한반도 평화통일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야당에 수혈된 ‘새 피’들의 낡은 인식이 점령군처럼 삽시에 야당을 접수하는 모습에서 야당의 허약한 체질과 빈곤한 철학을 새삼 확인한다. 한반도 위기의 본질은 북한의 허무맹랑한 일상적 위협에 있다기보다는 남한 내 평화통일 세력의 구조적 취약성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정치의 우경화 현상은 평화·통일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제·사회 영역에서의 우편향은 더욱 심각하다. 세계적 기준에서 보면 한국 정치는 야당의 우경화가 아니더라도 이미 극단적으로 우편향되어 있다.
단적으로 독일과 한국 의회만 비교해 보아도 우편향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현재 독일 연방의회 의원 630명 중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반면 여의도에 있는 300명의 국회의원 중 295명이—최소한 당의 정강에 따르면—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한다. 나머지 5명은 정의당 의원이다. 이런 형편이니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두 야당이 자랑스럽게 영입한 인사들은 대부분 신자유주의의 추종자들과 승자들이다. 승자독식 경제의 희생자들과 패배자들, 신자유주의 비판자들은 야당에서조차 찬밥 신세다.
야당에서마저 ‘안보 수구’와 ‘경제 보수’가 개혁의 선봉장으로 대접받고 ‘새 피’로 환영받는 전도된 정치 환경 속에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우편향 정치구조가 더욱 우경화되어가고 있다. 안보 수구가 국가의 평화를 파괴하고, 경제 보수가 사회의 평화를 유린하는 현실 앞에서, 국가는 전쟁을 향해 돌진하고, 사회는 지옥을 향해 추락하는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탈출구는 평화와 평등의 진보적 가치를 다시 힘겹게 세워가는 길밖에 없다.
한겨레 201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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