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을 보며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성과 한계를 동시에 느꼈다. 왜 우리는 위대한 민주혁명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반복하여 (유사) 파시즘의 야만으로 추락해온 것일까? 왜 우리는 자랑스러운 ‘광장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생활세계에서는 여전히 ‘아주 습관화된 파시즘’의 일상을 살아가는가?
10월 초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 주최하에 ‘새로운 세계의 도전과 새로운 세대의 상상력. 1968~2018’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대회는 이 오랜 의문을 푸는 데 한줄기 빛을 비춰줬다. 도쿄대, 베이징대, 케임브리지대, 프랑크푸르트대 등 8개국 대학의 학자와 학문 후속세대가 모여 ‘68혁명’ 50주년을 결산하는 이 학술행사를 치르면서 나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들이 대부분 이미 50년 전 다른 나라들이 겪은 것들이며, 이러한 ‘지각 현상’이 생겨난 것은 한국이 세계사의 보편적 흐름에서 유리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68혁명은 “역사상 두번째 세계혁명”(이매뉴얼 월러스틴)으로서 에릭 홉스봄의 말처럼 “이 장대하고 극적인 사건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한국만은 예외였다. 한국은 현대세계를 만든 이 세계혁명의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시대착오적인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다.
68혁명은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발화되어 베를린, 로마로 번지더니, ‘철의 장막’을 넘어 ‘프라하의 봄’을 점화하고, 다시 도버해협을 건너 런던을 불사르더니, 대서양을 넘어 뉴욕, 미국 대륙을 횡단하여 샌프란시스코에 닿았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 도쿄까지 덮쳤다. 그러나 이 거대한 세계혁명의 불길은 군사정권이 지배하던 반공국가 대한민국의 해협은 건너지 못했다.
유독 한국에서만 68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극단적 반공주의, 근대화 담론의 배타적 지배, 세상물정에 어두운 지식인 사회, 언론의 왜곡보도, 아메리카니즘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베트남 전쟁이었다. 한국은 전세계 지식인과 대학생이 반대한 베트남 전쟁에 전투병(32만명)을 파견한(미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한 나라였다. 이러한 ‘한국 예외주의’가 이후 한국 사회를 세계 공론장의 흐름에서 배제된 ‘무지의 골짜기’에 가두고, 한국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억압해온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매일같이 ‘50년 지각한 68혁명’의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미투운동’이 보여주는 지극히 취약한 페미니즘과 여성인권, ‘가면 쓴 민주주의’의 현실, 백인 선망과 유색인 차별에서 보이는 외국인에 대한 이중적 태도, 장애인·동성애자·난민 등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의 부족, 성해방 의식과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 사회적 정의에 대한 감수성과 반권위주의 교육의 부재 등 일일이 다 손꼽기도 어렵다.
68혁명의 부재 때문에 한국은 현대사에서 유례가 없는 부조리한 사회가 되었다. 소외, 자율, 탈물질주의, 반권위주의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사회, 페미니즘과 생태주의, 평화주의에 대한 녹색 감수성이 빈약한 사회,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사회, 군사문화가 생활세계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병영사회가 된 것이다.
‘68’은 세계 어디에서나 해방의 시작을 알렸지만, 한국에서만은 억압의 시작을 의미했다. 이제라도 이 뒤집힌 역사를 바로잡아 68혁명이 꿈꾸던 사회,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헬조선을 넘어서야 한다.
한겨레 2018-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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