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으로 촉발된 한반도 정세 권오중 / 2019-02-21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북한 정권의 핵무기 개발은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통해서 그 실체가 최초로 세상에 드러났다. 북한정권은 이후 2차 핵실험(2009년 5월 25일), 3차 핵실험(2013년 2월 12일), 4차 핵실험(2016년 1월 6일), 5차 핵실험(2016년 9월 9일), 6차 핵실험(2017년 9월 3일)까지 모두 6차례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1~6차 핵실험이 감행되는 동안 그 시기는 점차 빨라지며, 핵폭탄의 강도는 점점 증가되었다.
북한이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으려면 핵탄두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을 보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핵폭탄을 탑재한 폭격기가 이륙한다면 곧바로 요격당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는 과거처럼 폭격기에 핵폭탄을 싣고 가서 목표지점에 투하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전 세계는 북한의 핵탄두의 소형화와 ICBM 개발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이 상황에서 북한은 이를테면 남태평양 공해 상에 좌표를 찍어주고 핵탄두 ICBM을 실험했어야 했다. 그런데 북한은 좌표도 찍어주지 않고 2007년 11월 29일 “화성 15형” 발사를 하면서, 이 두 가지 의문점은 해소되었다. 즉, 북한은 화성 15형의 대기권 통과와 재 진입에 실패했고, 마찬가지로 핵탄두의 소형화 기술도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일본 홋카이도 근해에서 분리된 추진체의 잔해만이 발견되었을 뿐, 대기권에 다시 재 진입해서 낙하된 지점이나 미사일의 잔해가 전혀 발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북한정권이 핵탄두를 탑재한 화성 15형을 성공했다면,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후발 주자로 핵보유국 지위를 얻고, 미국과 대등한 관계의 평화조약 체결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와 ICBM 기술의 현주소가 확인되자, 북 핵을 둘러싼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더욱 강경한 UN 대북제제카드를 꺼내며 비핵화를 더욱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김정은의 2018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서 평화공세카드를 꺼냈다. 이후 미국은 국제법적으로 한반도 휴전체제에 국제법적 권한이 있는 6.25 참전 UN 16개국이 참가했던 '밴쿠버 외무장관 회담’을 2018년 1월 16일에 6.25 전쟁의 종전이후 처음으로 개최하면서,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휴전체제의 재편을 예고했다. 이에 반해 북한은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미국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판문점 선언을 통해 평화공세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또한 김정은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면서, 김일성 시대부터 소원했던 미-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이를 통해 핵탄두 소형화와 ICBM 개발에 필요한 시간 끌기와 더불어 미국과 핵을 담보로 체제보장 협상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였다.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 (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전혀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공동선언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을 보면, 김정은은 “북한만의 비핵화”를 고려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동-서독의 통일 당시에 서독에서 공식적으로 완전히 철수되었다고 했던 전술 핵미사일이 서독 동부 국경지역에서 300기 이상 배치되어 있었던 전례로 볼 때,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전술 핵이 배치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배치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에 이런 가정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은 절대로 북한만의 비핵화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북 핵 문제는 단지 남-북한 그리고 미-북 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6.25 전쟁으로 이뤄졌던 한반도의 2차 분단과 휴전체제는 1957~1958년에 대한민국에 배치된 전술 핵을 통해 세력균형의 완성에 이르렀지만, 2006년 이후 현재까지 6차례에 걸친 북한의 핵폭탄 실험으로 인하여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휴전체제는 휴전조약을 체결했던 미국(UN 대표)과 중국 그리고 북한에 의해 생성된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제 질서였다. 그래서 휴전체제를 평화적으로 변경하려면 - 독일 통일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 이 3개국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물리적인 힘(전쟁)으로 체제를 파괴하는 방법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평화적인 체제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과 북한의 평화조약을 통해 휴전상태를 종식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1953년 이래 지속되어 왔던 휴전체제는 북 핵문제가 촉발된 이후 그 수명을 연장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이제 한반도는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군사굴기(軍事崛起)를 표방한 팽창노선과 북한의 핵무기 보유 그리고 트럼프의 신(新) 질서 전략의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H. 트루먼 대통령 시절에 구축된 “포츠담 체제”가 유럽에서 45년 지속되고 1990년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으로 종식되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1953년에 구축된 “휴전체제”가 현재까지 66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대등한 관계의 세력균형으로 유지되어 왔던 휴전체제에서 세력균형의 추가 중국과 북한 쪽으로 기운다는 명분을 미국에 주었고, 이는 아이러니하게 북한의 비핵화를 빌미로 중국을 통상적 그리고 안보적으로 압박하면서 동아시아의 질서재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미국에 제공했다. 어쩌면 북 핵은 미국에게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의미가 변했다. 중국에 대한 무역전쟁과 경제제재를 통해 중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미국도 북 핵 문제를 급하게 해결할 필요가 없고, 도리어 북한과의 협상에서 시간을 끌 수 있다.
미국과 북한이 평화조약을 체결하려면 2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 군사적인 힘의 균형을 통한 대등한 불가침(평화) 조약이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핵탄두 ICBM을 보유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둘째로는 1951년 9월 8일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유사하게 북한이 미국에게 굴복하는 조약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현재 일본처럼 미국에 문호를 전면 개방해야 하고, 심지어는 미군의 주둔도 수용해야 한다. 따라서 체제보장이 담보되지 않는 평화조약과 종전선언을 북한 정권은 절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한편 중국의 입장에서 미-북 평화조약은 미국과의 군사적 완충지역이 휴전선에서 압록강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휴전체제에 대해 국제법적 권리 국가인 중국은 이러한 불평등 평화조약을 절대로 방관할 수 없다. 중국에게 최선의 방법은 현재의 한반도 분단 상황이 지속되면서, 북한을 계속해서 위성국가로 두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일단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통제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미-북 평화조약이 아닌, 중국이 참여하는 미-북-중 평화조약을 통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국제법적으로 미국과 대등한 관계라도 유지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을 대등한 관계로 인정하지 않는 한, 이러한 3자 평화조약은 불가능하다.
북한정권이 핵탄두 ICBM을 성공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5년 7월,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에 독일과 유럽연합(EU) 등이 이란과 “핵 합의”(2016년 1월 발효)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란은 ICBM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고 있으며, 2016년과 2017년에 걸쳐 몇 차례의 발사시험을 했다. 북한정권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바로 “이란 핵 합의”의 사례대로 진행하고자 한다. 이란의 사례처럼 북한도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할 핵시설과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등의 일부를 남겨놓고, 대부분 폐기하면서 이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하는 것이다. 즉 CVID가 아닌 핵무기의 일부 보유를 승인받은 상태에서 ICBM 개발을 성공하겠다는 전략이다. 반면에 미국은 북한정권이 ICBM을 성공하기 이전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관철하려고 한다. 따라서 북한정권은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매우 큰 입장 차이를 나타낸다.
또한 현재 핵보유국 지위를 갖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7개국이며, 이스라엘도 핵탄두 ICBM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국가들은 지구상에서 핵 무력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이 국가들도 핵 무력의 기득권을 더 나누길 원치 않기 때문에 북한에게 핵보유국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현재 북한은 ICBM 성공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설령 ICBM을 영원히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최소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에 대한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핵무기 보유는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한 마지막 카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큰 틀에서 북한과 또는 북한, 중국과의 평화조약을 통해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미국에 유리하게 재편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이 현재 북 핵문제와 무역전쟁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것도 동아시아에서의 새로운 질서 구축을 하려는 트럼프 전략의 일환이다. 즉, 휴전체제의 국제법적 권리국가인 중국을 - 과거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동유럽이 무너졌듯이 -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아서 미국이 의도하는 북한의 비핵화와 동아시아에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의 변경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북한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김정은의 통치체제를 보장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평화조약과 종전선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북한의 체제보장이 이루어진다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1 민족2 국가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남-북한의 통일은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한편 미국이 끝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안보적 불안은 지속되지만, 남-북한 통일에 대한 희망은 지속될 수 있다. 결국 어떤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종전선언을 할 것인지는 - 중국의 동의를 전제로 - 북한과 미국이 결정할 문제이다. 평화조약과 종전선언은 표면적으로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체제보장을 받기 위한 북한정권의 전략이자,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의도하는 새로운 질서재편 전략의 출발점이다. 다시 말해 평화를 대가로 영구분단이 공식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평화조약과 종전선언이라는 미국과 북한의 의도는 일치하지만, 그 목적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기 때문에, 미-북 간에 합의점을 도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중국이 전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UN 대북제재로는 북한을 고립시키고 백기투항을 받아낼 수도 없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CVID만 보장된다면 김정은 체제를 보장해 줄 수도 있지만, 김정은은 베트남의 사례처럼 더 확실한 자신의 지배체제 보장을 원하고 있다. 결국 북한이 북한을 위성국으로 유지하길 원하는 중국과 동행할지 아니면 중국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만 확실한 체제보장을 담보할 수 없는 미국과 동행할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김정은의 결정에 달려있다.
권오중 / 외교국방연구소 연구실장
독일 마부르크대학교에서 현대사, 사회경제사, 정치학을 전공했다. 「분단국의 정치」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서독의 NATO 가입과 SEATO의 창설 그리고 한국 내 핵무기 배치를 통한 미국의 봉쇄적 안보정책 1949~1958」 등 다수의 논문들을 통해 독일과 한국의 분단 문제를 외교사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한국외대와 경희대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육종합연구원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임했었다. 현재는 (사)외교국방연구소에 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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