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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사 Issue 분석/9-1. 대한민국 근대사 (권오중)

8-5-18. 6.15 남북공동선언과 햇볕정책의 실제적 의미와 목적

by organizer53 2023. 12. 26.

6.15 남북공동선언과 햇볕정책의 실제적 의미와 목적      권오중 / 2019-01-24 


2000년 6월 15일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이 합의했던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 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과거 김대중 정부는 1998년 2월에 소위 “햇볕정책”(대북 3원칙)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1) 일체의 무력도발 불용, 2) 흡수통일 배제: 평화공존을 통한 남북연합 실현, 3) 화해, 협력을 적극추진: 북한의 변화노력을 지원하며,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매진한다”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바로 이러한 햇볕정책의 토대 위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6.15 선언의 5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제1항에서 주장하는 통일문제를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휴전체제’를 무시하는 내용으로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휴전체제의 책임당사국들이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다. 분단의 시작이 우리 민족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이상, 그 해결도 남과 북이 독단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역시 휴전체제의 책임당사국에 속하는 북한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북한 정권이 이런 식의 합의를 한 것은 핵무기 개발을 숨기기 위해 화해무드를 조성하려는 것으로서 우리 대한민국을 완전히 기만한 것이다. 그리고 휴전체제의 구조를 모를 리 없는 김대중 정부 역시 대한민국 국민을 기만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 민족끼리” 또는 “자주적” 통일이라는 것은 북한 정권이 대한민국 국민을 유혹할 때 즐겨 사용하는 용어로써 남남갈등을 유발하려는 목적이 분명한 북한정권의 식상한 레토릭(rhetoric) 일뿐이다.  

제2항에서 등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한 통일여건 조성이라는 것 역시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추상적인 합의에 불과하다. 우선 “낮은 단계”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이후 2000년 10월 6일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에서 비로소 그 내용이 소개되었는데, “1 민족, 1 국가, 2 제도, 2 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채,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자는 것”이라고 정의되었다. 그리고 이는 1970년대 김일성이 제안했던 “고려연방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써,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그 내용에서는 북한 정권의 기존 연방제 주장과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현재 지구상에는 연방제를 채택하는 여러 국가들이 있다. 미국, 독일, 스위스 그리고 형식적이긴 하지만 영연방 국가들과 구소련이 해체된 뒤 등장한 독립국가연합(CIS)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 연방제 국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정치적 이념적 체제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체제인 상태에서 연방국가인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또한 “연방제”라는 것은 하나의 중앙정부가 있는 상태에서 각기 독립적인 연방국가의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족통일기구”의 구성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논의나 합의도 없이 “연방제”를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어패가 있다. 또한 하나의 중앙정부가 아닌 정체불명의 민족통일기구의 구성은 서로 다른 체제의 두 개의 국가들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1946~1947년 사이에 좌절된 “미·소 공동위원회” 구성에 대한 의견 차이, 즉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한 상반된 이해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 이런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이라는 합의 또한 추상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평화적 통일은 체제가 동일할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는 흡수통일을 배제한다고 분명하게 천명하면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일의 과정으로 하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6.15 남북공동선언문만을 놓고 보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해서 어떤 방식의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그 어떤 정의도 담겨있지 않다. 단지 김대중 정부가 제안했던 “남북연합”과 김정일 정권이 요구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성이 있다고 서로 인정했다는 것뿐이다. 이 지점에서 두 정상의 의견이 일치했었다. 햇볕정책이 추구하는 남북연합은 한반도의 평화유지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절대로 통일국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남북연합은 우리와 다른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북한의 체제보장과 한반도의 분단현상 지속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 역시(2000년 10월 6일 보고회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체제통일을 거부하는 것으로서 분단현상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체제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남북연합”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결국 제2항을 통해 북한정권이 얻고자 하는 것은 북한체제의 인정을 공식화하는 것이고, 이를 담아냈던 것이 6.15 남북공동성명이었다.  

제3항과 제4항은 남-북한 간의 “인도적 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요구하는 비전향장기수 북송과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경제적 지원에 합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이 바라는 핵심내용은 결국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합의문 내용대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그래서 북한의 경제가 활성화되고 주민들의 생활이 개선된다면, 북한의 정권과 주민들이 굳이 대한민국과의 통일을 원하겠는가를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북한의 경제가 정상화된다면, 체제도 안정되고 공고화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경제의 안정화에 도움을 준다면, 한반도의 평화를 대가로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체적으로 볼 때,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우리는 그 합의의 목적과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념이 다른 분단국가의 통일방식은 평화적이건 전쟁을 통해서이건 흡수통일 이외에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독일, 베트남, 예멘 등의 사례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즉 분단국가의 통일은 어느 일방의 체제가 붕괴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한반도의 분단을 구속하는 ‘휴전체제’가 엄연히 지속되고 있는데, 남과 북이 독단적으로 분단문제의 해결을 위한 모종의 합의를 한다는 것 자체도 국제법적으로 불법이다. 그래서 6.15 남북공동선언의 내용을 보면 분단 극복에 대한 진정성이 전혀 없이, 평화를 대가로 하는 김정일이 원하는 북한의 체제보장과 경제적 보상만이 핵심 내용이었다.  

한반도 분단문제에 있어서 평화와 통일은 절대로 병립할 수 없다. 평화가 유지된 다는 것은 분단의 지속을 의미하고, 통일은 분단의 종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공존)가 통일의 전 단계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이 없는 것이 평화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평화는 유지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분단도 유지되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평화공존(낮은 단계의 연방제)과 통일을 연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진정한 목적이 “평화공존(영구분단)”이기 때문에 “통일”의 방법에 대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정권의 의도가 적화통일이 아니라면 체제유지이다. 북한정권은 절대로 자신의 체제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이 이제는 그 목적을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시점이 왔다. 햇볕정책은 영구분단정책이었음에도 지난 20년 가까이 통일정책으로 포장되어 왔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우리의 역대 정부들이 거부해 왔던 북한정권의 정치적, 경제적 요구와 선전선동에 우리가 합의해 준 것이다. 그리고 이 합의 선언은 지난 기간 통일문제의 주인공 역할을 해오면서, 대북정책과 관련해서 남남갈등의 중심에 서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과연 북한정권이 자신의 체제를 포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북한정권이 진정 남북통일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북한의 정치체제를 포기하고 대한민국에 흡수되어야 한다.

 

 

권오중 / 외교국방연구소 연구실장
독일 마부르크대학교에서 현대사, 사회경제사, 정치학을 전공했다. 「분단국의 정치」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서독의 NATO 가입과 SEATO의 창설 그리고 한국 내 핵무기 배치를 통한 미국의 봉쇄적 안보정책 1949~1958」 등 다수의 논문들을 통해 독일과 한국의 분단 문제를 외교사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한국외대와 경희대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육종합연구원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임했었다. 현재는 (사)외교국방연구소에 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