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정치(政治)를 정리(整理)해 드립니다
6. 대한민국 정치와 민주주의 바로 알기/6-3. 자본주의를 바로 알자

6-3-6. 공산주의의 몰락과 김일성 주체사상의 오류

by organizer53 2024. 4. 29.

1.  공산(사회)주의의  탄생과  몰락의 역사

가.  소비에트 연방의 탄생으로 공산 주의 시작

  공산주의 정권의 수립(1917년)

      ① 1917년 러시아에서 레닌 주도로 최초의 공산주의 정권 탄생

      ② 소련을 중심으로 중국, 동아시아, 동유럽 국가들이 공산주의 진영 구축

 

  • 1905년의 제1차 러시아혁명과 1917년의 3,10월혁명을 포함하는 러시아의 사회변혁 혁명 발생
  • 볼셰비키가 정권을 획득한 직후인 1918년 1월에 개최된 제3차 전(全)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했다.
  • 그뒤 1922년 12월 30일 이 러시아 연방공화국에 우크라이나·벨라루스·  자카프카지예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등 3개국이 가입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성립했다

 

 

 

나.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1992년 1월)

- 1992 1 1일 사회주의 혁명의 종주국이자 한때 세계의 절반인 공산주의권을 호령하던 소련이 해체되었다.
- 1991 12 8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과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슈슈케비치 벨라루스 최고회의       의장이 소련에서 탈퇴하고, 완전한 주권을 갖는 공화국들이 참여하는 ‘독립국가연합 (CIS)’을 결성한다고 선언하면서         소련은 해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3개국의 합의만으로 소련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나머지 공화국들이 속속 새로 창설된 공동체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 12 21일 조지아를 제외한 11개 공화국이 독립국가연합을 발족한다는 협정서에 서명했다. 소련에 대한 사실상의 사망      선고였다. 결국 고르바초프도 압력에 굴복하고 25일 사임을 발표했다. 곧바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군 최고통수권을         이양받았다.
- 다음 해 1 1일을 기해 발트 3국을 제외한 독립국들이 독립국가연합을 발족시켰고,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1922 스탈린에 의해 만들어진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은 이로써 창건 69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졌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원인

-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의 과도한 군비경쟁
- 20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여파
- 공산주의의 한계성 노출
- 소비에트연방내 다양한 민족들의 민족주의 선언
- 고르바쵸프의 개혁과 개방 정책
 

공산주의의 실패이유

- 국가권력에 의한 계획경제체제의 실패     

       모든 것이 지시와 명령에 의한 국가가 계획 : 수많은 오류 발생

       관료주의에 의해 혁신과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 비효율적인 경제 환경

 

- 공산(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일당독재와 전체주의로 변질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 반드시 반 혁명 책동으로 일정기간 독재가 불가피

      ② 사회주의 완성을 빌미로 일당독재의 정당화, 전체주의로 변질

       권력의 핵심층은 특권층으로 변질,  장기집권 독재자 양산

 

- 단기간의 경제발전은 존재하나, 장기적인 경제발전은 불가능

       개인의 자유를 전체주의에 넘겨주는 암울한 사회 : 시민의 민주화 열망

      ② 결국 자본주의 요소를 경제에 도입하기 시작

            -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정책 : 공산당 체제유지, 자본주의 경제체제 도입

            -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 : 자본주의 경제 체제 도입

 

 

3.  민주적 사회주의의 등장 (1950년대 중반)

       공산주의의 급진적 폭력 혁명론에 반대하는 점진적 사회 개혁론

       소련식 사회주의의 폭력성 비판, 의회 활동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 주장

      ③ 공유제를 바탕으로 농업수공업소매업중소기업 등 사적 소유 인정

 

 

 

 

4.  사회주의 국가의 변화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유럽의 옛 사회주의 국가 : 자유시장경제 질서와 민주주의 질서 도입

      ②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정책 : 공산당 체제 유지, 자본주의 경제 체제 도입

      ③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 : 자본주의 경제 체제 도입

 

 

 

  • 사회주의는 유럽의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에  융해) 

         → 영국의 노동당, 독일 사민당, 스페인의 노동자사회당, 이탈리아 좌파민주당, 오스트리아의 사민당, 프랑스 사회당

  •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국가들 중에는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아직도 일당독재체제로 운영되는 국가도 있지만 동유럽처럼 공산 정권이 몰락하고 공화정이 설립된 국가들도 있습니다.
  •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이후 한때 전 세계에는 25개의 공산주의 국가가 존재했지만, 지금 남아있는 공산국가는 중국·베트남·라오스·북한·쿠바 등 5개국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베트남 등은 개혁·개방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쿠바가 개방 대열에 동참하면서 지구상에 남은 사실상 유일한 공산국가는 북한뿐이다.
  • 이론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규정하는 2가지 특징은 공산당 일당 독재와 계획경제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후 폴란드·체코 등 동유럽 국가가 가장 먼저 공산당 독재와 계획경제를 도입했고, 1948년과 1949년 각각 북한·중국이 공산화된 뒤 1970년대 베트남·라오스 등에서 공산주의 국가가 건립됐다.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70년대 공산주의 국가는 25개국에 달했다.
  • 하지만 1989년 독일 통일과 1991년 구소련의 붕괴 이후 공산권에는 ‘민주화’ 바람이 불었고, 대부분 국가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를 도입했다.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도 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을 통해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독재,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허용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전환했다. 1975년 월남을 통합한 베트남도 1980년대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수입했다. 북한과 함께 마지막 공산주의 보루로 남아있던 쿠바도 2014년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에서 미국과의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 북한만이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있는 공산국가인 셈이다. 북한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로 시장개방을 시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배급체제로 돌아섰다. 현재도 북한 당국은 ‘장마당(시장)’ 일부를 허용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 중국이 1979년, 라오스와 베트남이 각각 1992년과 1995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한 상태로, 북한은 아직까지도 미국과수교를 하지 않은 유일한 공산국가이기도 하다.

 

5.  국부론과 자본론의 경쟁무대, 한반도

  •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자유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통제경제를 주장한다.
  •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아담 스미스의 처방을 따른 나라들은 부자 나라가 되고 칼 마르크스의 처방을 따른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담 스미스의 시장경제 원리를 선택한 남한은 성공한 나라가 되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원리를 따른 북한은 실패한 나라가 되었다.
  • 우리가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은 자본주의를 선택하고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공산주의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6. 김일성 주체사상의 오류

가. 주체사상의 의의와 내용 

  • 주체사상은 "당과 국가 활동의 지도적 지침"이다. "조선로동당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에 의해 지도된다"는 당 규약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는  당과 국가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통치 방침인 것이다. 
  • 이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모든 분야에서 주체적이고 자주적으로 자기 실정에 맞게 혁명과 건설을 이루어 나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정치와 외교에서 자주성을 지니고, 경제에서 자립적으로 민족경제를 이루며, 국방에서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나라를 지키자는 것이다. 

나. 주체사상이 태어난 시기와 배경 

  • 북한 당국은 김일성이 1930년 6월 만주 카륜에서 <조선공산당>을 결성하면서 처음으로 '주체'를 제시했는데, 그때는 사상으로서의 체계를 갖추지 않았지만 주체사상의 시원 (始原)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한의 대다수 전문가들은 김일성이 1955년 12월 "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면서 '주체'를 처음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 아무튼 김일성은 그 연설에서 조선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역사와 지리 그리고 조선인민의 풍속을 알아야 하며, 아이들에게 민족적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대외정책이나 정치 사업에서 소련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닌 조선식으로 하자면서, "쏘련에서 나온 사람들"과 "중국에서 나온 사람들"을 비판했는데, 바로 이 대목을 통해 주체사상이 태어난 배경을 추정해볼 수 있다. 

    첫째,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부터 소련과 중국 사이에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북한이 난처해졌다. 소련은 사회주의 종주국으로 1948년 북한 정부가 세워질 때 결정적 도움을 주었고, 중국은 1950-53년 6·25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보내 북한을 구해주었는데, 두 우방국들이 서로 다투고 있으니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지 곤란해진 것이다.

    둘째, 이 무렵 북한 안에서는 권력 투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북한 정부를 세운 주도세력은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경성파, 김일성을 대표로 한 빨치산파, 김두봉이 중심이 된 중국파, 그리고 허가이를 대표로 한 소련파였는데, 이들 4개 계파가 처음에는 힘을 합쳐 나라를 세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투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김일성은 소련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닌 조선식으로 혁명을 성취하자면서 소련파와 중국파를 사대주의자로 몰아붙여 숙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이른바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주체와 자주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주체사상의 태생적 배경은 안에서의 권력투쟁과 밖에서의 중·소 분쟁이란 말이다

다. 주체사상의 발전 과정과 변질 

  • 북한은 1955년 '사상에서의 주체'를 앞세우고, 1956년 '경제에서의 자립'을 내세웠다. 1962년엔 '국방에서의 자위'를 발표하고, 1966년엔 '정치와 외교에서의 자주'를 선언했다. 이를 바탕으로 1970년 조선로동당 규약에 주체사상을 당의 이념으로 명시했으며, 1972년엔 헌법을 개정하면서 주체사상을 공식적인 통치방침으로 규정했다. 
  • 이러한 주체사상은 1974년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면서 크게 변질되었다. 특히 그가 "당 안에는 오직 하나의 사상, 수령의 사상만이 지배해야 하고 수령을 중심으로 전 당이 굳게 통일 단결되어야 하며, 수령의 유일적 령도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유일사상체계 (唯一思想體系)'를 확립하면서부터다. 1960년대까지는 주체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바탕을 두고 북한의 현실에 맞게 발전해왔다고 주장했지만, 1970년대부터는 전자가 후자보다 더 우월하고 독창적인 혁명사상이라고 주장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버리고 주체사상만 따르라고 한 것이다.

    변질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수령론'으로, "사회변혁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참다운 정치지도자, 수령을 옳게 추대하는 것"인데, 사람이 자주성과 창조성 그리고 의식성을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기는 하지만, 무턱대고 자신의 운명을 자주적이고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없고 반드시 수령의 올바른 영도를 받아야 역사적 주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둘째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으로, 사람이 크게 머리와 몸통 그리고 팔다리로 이루어져 있듯이, 사회 역시 하나의 생명체처럼 이루어져 있는데, 수령이 머리이고 당이 몸통이며 인민대중이 팔다리라는 내용이다. 여기엔 사람이 진짜 부모로부터 타고난 육체적 생명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안겨주신 정치적 생명"을 갖게 되는데,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는 육체적 생명을 초개와 같이 바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되어 있다. 

    셋째는 '후계자론'으로, 김일성의 혁명 과업은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하여 나가야" 하는데, "수령의 직접적 계승자 후계자는 오직 수령의 혁명사상을 가장 완벽하게 체현하고 그것을 옹호 관철하기 위하여 한 목숨 바쳐 투쟁할 각오가 되어 있으며, 탁월한 령도력과 천재적 예지를 가진 사람만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라. 주체사상에 대한 평가와 교훈 

  • 긍정적 측면으로 북한이 소련의 지배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중국의 대국주의를 피하며 자주성을 추구하고 강화한 점이다. 
  • 부정적 측면으로는 수령을 절대화하고 우상화하면서 인민의 무조건 복종과 수령 독재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부자간의 권력승계까지 합리화한 점을 들고 싶다. 
  • 한편, 1990년대 남한에서 이른바 '주사파' 논쟁이 불거졌는데, 우리 사회에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세력'이 존재하게 된  두 가지 배경 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한 사회의 천박한 자본주의 풍조와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주체사상에 빠져들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돈 때문에 사람 목숨까지 빼앗는 황금만능과 인명경시 풍조 속에서 물질보다 사람을 중시한다는 주체사상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내정간섭이나 부당한 압력에 굴종하는 남한의 종속적 현실에서, 자주외교를 내세우며 미국에 당당하게 맞서는 북한의 모습이 멋있게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함으로써 오히려 주체사상을 확산시키거나 '주사파'를 만들어냈으리라고 믿는다. 주체사상에 대해 제대로 알리거나 건전하게 토론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정보를 통제하며 왜곡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주체사상에 빠지도록 이끌었을 것이란 뜻이다. 

 

출 처 : [이재봉의 법정증언] 주체사상은 대남 혁명 전략인가?
           이재봉 원광대 정치외교학 교수, 사회과학대학장, 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