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민주화를 이끌어왔던 한국의 86세대
- 한국의 86세대는 1980년대 학번이며, 60년대생을 의미
-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벌였고, 많은 희생을 치룬 세대
- 그러나 그들은 정치민주화 이후 뛰어든 곳은 정치무대였다
- 그러나 독일의 6∙8 혁명 이후 68세대들은 주로 학교와 언론사에 취직하여, 생활 제도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함
- 그런 노력으로 있었기에 새로운 독일이 가능했던 것이며 6∙8 혁명 이후 독일의 교육 철학이 바뀌기 시작했고
- 독일의 학교에서 경쟁을 시키지 않는 교육개혁이 일어났다
- 경쟁이 심화되면 결국 나찌즘의 부활이 일어난다고 생각 →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내세워 유대인을 차별 억압했던 나찌즘
가. 86 운동권 인재의 정치권영입
나. 문재인의 비운동권 86 세대 인재 영입
- 20대 총선은 당초 여당(새누리당)의 완승이 점쳐졌다. 새누리당이 과반에서 최대 180석가량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달아 나왔다. 그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공천권이 주어졌다.
- 당내 기득권으로 지목된 친노,친문,86그룹 등 ‘운동권’ 이미지를 약화할 수 있는 인사들이 이때 대거 영입됐다.
- 문재인 대통령의 ‘영입 1호’라는 별칭을 얻은 표창원 경찰대 교수를 비롯해 게임업계의 성공한 CEO 김병관, 유명 어학원을 운영하는 박정, JTBC ‘썰전’ 등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정치평론가 이철희 등의 비문계 인사들이 대폭 충원됐다. 고졸 출신으로 삼성전자 임원에 오르며 ‘유리천장’을 깬 양향자 당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무도 주목받은 인사였다.
- 또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진영 의원 등 박근혜 정부 및 친박계에서 ‘팽’ 당한 인사들도 합류시켜 전력을 확충했다.
- 20대 총선은 예상을 뒤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 압승 및 부산·경남에서의 약진을 바탕으로 123석을 얻으며 원내 1당으로 올라섰다.
2. 정치민주화에 머문 86세대
가. 독일의 6·8 혁명세대의 역할
나. 대한민국 86세대는 세상을 바꿔 놓았는가?
다. 왜 대한민국 86세대는 세상을 바꾸지 못했을까?
- 첫째, 정치적 비전이 빈약했다.
- 독일의 6∙8 혁명세대가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꿨던 반면, 한국의 86세대는 군사독재 타도가 일차적인 목표였다.
- 6∙8 혁명이 사회의 ‘전면적 해방’을 모색했다면, 86은 정치 민주화라는 ‘특수한 해방’에 집중했다. 한국 사회가 정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화, 경제민주화, 문화민주화는 여전히 요원한 현실은 정치적 비전이 부족했기 때문
- 둘째, 도덕적 우월감의 덫에 갇혔다.
- 86세대의 적수는 기득권을 고수하려 온갖 편법을 서슴지 않는 기회주의적 수구 세력이었기에, 이들은 늘 도덕적 으로 우위에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 이것이 이들을 무능하게 했다. 이미 사라졌어야 할 역사의 유령과 싸우다가 그들 자신도 역사의 퇴물이 되어갔다. -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상대와 싸워 본적이 없었다
- 반대만 하는 기회주의적 수구세력하고 만 싸워본 경험
- 도덕적으로 우월한 상대를 만난 경험이 거의 없기에 도덕적 우월감이 그들을 무능하게 만들었다.
- 셋째, 파시즘의 역설 때문이다.
- 86세대는 젊은 시절 목숨을 걸고 파시즘의 야만과 싸운 세대이다.
- 86세대는 밖으로는 파시즘과 싸우면서, 안으로는 파시즘을 키웠다.
라. 정치 민주화에 비해 사회, 경제, 문화 민주화 노력 부족
-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이 나라에서는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가 괴리되어 있다. 한국인들은 정치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자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는 공개적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한다.
- 일상 민주주의는 사회, 경제, 문화 민주화를 말함
- 우리사회가 일상 민주주의에서 여전히 낙후되어 있는 것은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군사독재 시대가 남긴 집단주의, 군사주의, 병영문화 등도 깊은 관련이 있겠다. 바로 이런 것들이 뒤얽혀서 일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군사문화의 전면적 지배이다.
-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이다. 타인을 배려,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여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 이러한 심성을 내면화한 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독재의 야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
마. 변화를 위한 86세대의 노력이 필요한 때
- 86세대의 실패는 이 세대의 비극을 넘어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한때 정의를 외치며 자신을 희생했던 세대의 정치적 실패는 사회 전반에 더 큰 실망감과 좌절감,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를 퍼뜨린다.
- 지금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 무력감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 지금이 86세대에게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다. 재벌개혁, 정치개혁, 교육개혁,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결연히 감행하여 100년 대한민국을 ‘새로운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
- 그리하여 후세대에게 ‘지옥’을 넘겨주지 않는 것, 이것이 86세대에게 남겨진 마지막 시대적 소명이다
바. 과잉 대표성을 가졌던 86세대
-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은 86세대의 과잉대표성과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 민주화, 산업화의 86세대가 정치민주화는 이뤘으나, 사회, 경제, 문화의 민주화는 실패하였다
- 민주화, 산업화 훈장덕에 과분한 혜택을 누리며, 기득권화 됨
- 정의와 공정을 외치던 사람들 맞나? : 내로남불의 끝판왕
- 조국사태를 통해 교육과 관련된 특권세습논란이 노출되었다
출 처 : 김누리 교수 특강
3. 수구 기득권이 된 86세대
가. 말 따로, 행동 따로 : 날개꺾인 '도덕성'
-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 청문회장에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후보자는 학벌이나 출신과 달리 진보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이유로 비판 받는 것이 아니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언행 불일치 때문이다. 후보자가 진심으로 변명 없이 젊은 세대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치인의 ‘말 따로, 행동 따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사회 지도층에 진입한 86세대의 내로남불은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민주화 가치를 공유하며 스스로를 정당화 시켜 온 세대가 이후 대한민국 기득권으로 편승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기득권 문화를 향유했기에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고 했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개인의 내면을 성찰하고, 삶을 꾸준히 되돌아본 뒤 자신이 추구한 가치와 일치시키는 일은 민주화 가치와는 또 다른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86세대는 삶 속에서 내면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인식이 약했다”고 진단했다.
- 사회적 신뢰 지수가 낮다 보니, 한국인은 각자도생에 익숙하고, 이런 풍토 속에선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진보 인사가 언제든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력ㆍ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신뢰라고 하는 사회적 자본이 낙후해 있다”며 “정치ㆍ사회 엘리트들의 거짓말, 내로남불이 사회 자본으로서의 신뢰를 더 떨어뜨리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 더 큰 문제는 내로남불이 정치 불신과 혐오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윤평중 교수 역시 “진보는 민주주의ㆍ정의ㆍ공정을 외쳤고,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을 통해 출현한 정부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실상 나을 게 없다는 인식을 줬다”며 “말과 실상이 정반대가 되고, 모순이 생기면서 사회적 학습효과로 냉소와 불신, 환멸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 86세대에 대한 비판 부상
-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라는 사건을 통해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이른바 ‘386세대’가 주목을 받았다. 이후 노무현 탄핵의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386세대는 정치권에 대거 입성했다. ‘386’은 당시 최첨단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만큼 기성 정치를 바꾸는 새로운 주류가 되리라는 기대가 반영되어 있었다.
- 물론 당시에도 능력 없고 과격한 아마추어 같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서, 주로 보수진영이나 386보다 윗 세대의 관점에서 비판이 이뤄졌다.
- 그런데 지금은 비판의 관점이 바뀌었다. 386세대들은 이제 50대, 즉 ‘586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이젠 86세대로 통칭한다.) 이제 86세대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기성세대다. 집권정치인들의 경우 노무현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면서 다시 집권에 성공했다. 또한 기업, 학계, 언론, 지역사회 등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지배적인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 이제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소위 ‘태극기부대’가 아니라, 젊은 세대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86세대에 대한 원망, 심지어 혐오도 종종 나타난다. 좋은 시절에 태어나 ‘꿀만 빨다가 힘든 건 다 떠넘겨 놓고 꼰대질하는 아재들’이라는 것이다.
다. 86세대가 누리는 지나친 행운
- 50대의 노동시장 상위 20% 점유율이 지난 10년간 크게 증가했다. 2004년 50대의 노동시장 상위 20% 점유율은 11%인 반면, 2015년에는 19%다. 이전 세대보다 더 오래 노동시장에서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60년대 이전 출생 세대들은 7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보다 근속년수가 길다. 근속년수를 비교하면 11.6년 대 9.7년으로 2년 정도 차이가 난다
- 자산에 있어서도 60년대생은 1990년대 이후 대규모 아파트 공급과 주택금융화의 혜택을 받았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분석 시점을 늘려보면 86세대 대졸 이상의 가계순자산은 96%, 고졸 이하는 73% 증가한 반면, 유신세대 대졸 이상은 37%, 고졸 이하는 45% 증가했다.
- 86세대가 1989년 제1기 신도시 개발계획 이후 1991년 주택 200만 호 공급 시기에 분당, 일산, 평촌 등에 입주하면서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에 가장 많은 혜택을 보았다고 추론한다. 이 시기에 86세대가 사회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에 도입된 주택청약제도와 주택금융규제 완화의 혜택도 받았다고 본다.
- 86세대는 ‘58년 개띠’로 상징되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한국경제가 일정한 성장궤도에 오를 때 태어나, 고도 성장기에 20대를 보내고,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사회에 진출했다. 이전 세대보다 더 높은 소득성장과 자산성장을 경험했고, 외환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한 X세대(70년대생), 밀레니엄 세대(80년대생 이후)의 선배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세대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졌다.
- 1979-80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한국 경제는 중화학공업화에서 신자유주의로 이행한다. 86세대는 대학에서 군부독재 비판에 앞장섰고, 나아가 독점자본주의와 미국 제국주의를 비판했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한국이 금융세계화에 편입되며 해외 자본이 유입되고 이를 바탕으로 재벌이 문어발식으로 확장할 때 사회에 진출한 것이다.
- ‘86세대의 행운’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시작될 때 사회에 진출해, 그 위기의 직격탄을 맞기보다는 성장기의 마지막 혜택을 입었다는 점이다
라. 86세대는 이미 보상받을 것 다 받았다
-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는 범진보진영의 핵심이다. 80년대 학생운동 세대인 이들은 민주화의 주역이다
-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은 180명. 이 중 50대는 113명(62.7%)에 이른다. 86세대가 다수 포진하면서 평균 연령도 55.1세를 기록했다.
- 86세대의 헤게모니는 21대 총선의 압승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하지만 범진보진영 차원에서 86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 같지 않다.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1987년에 태어나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 의원으로 당선된 장혜영 의원은 86세대를 '기득권자'로 규정하기도 했다.
- 민주당의 40대 주자들도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장파'로 꼽히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86세대는 기회를 소진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1971년생이다. 1973년생인 박주민 의원도 선배 세대와는 다른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86세대는 이제 주도권을 다음 세대에게 일부라도 이양하기 시작해야 마땅하다"며 "86세대가 정치적인 대표성을 가지게 된 것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는 것인데, 지금에 와서도 그것을 주장하기에는 정치권 86세대는 이미 보상 받을 만큼 다 받았다"고 말했다.
- 장 교수는 15년 전 한국의 엘리트 3만2000명을 분석한 결과도 소개했다. 그는 "운동권 출신 엘리트의 국회의원 당선 확률은 모든 조건을 통제했을 때 다른 엘리트보다 100배가 넘었다"며 "그런데 86세대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운동권으로 희생할 때 당신들은 뭐했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1 201115)
마. 운동권 출신인 이원욱 민주당 의원 발언
- “민주당의 동료 의원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민주유공자와 그 유족 또는 가족에 대해 교육 지원, 취업 지원, 의료 지원, 대부, 양로지원, 양육지원 및 그 밖의 지원을 실시함이 골자”라며 “나 또한 민주화 운동 출신 의원이지만 과도한 지원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힘든 개정안”이라고 했다.
- 그는 “(이 법안이 발의된 것을 두고) 국민은 법률을 이용해 ‘반칙과 특권’ ‘불공정’을 제도화하겠다는 ‘운동권 특권층’의 시도라고 판단할 것”이라며 “대상과 숫자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민주화운동 세력이 스스로를 지원하기 위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용했다는 데 있다”고 했다.
- 고려대 법대를 나온 이 의원은 1985년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농성으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운동권 출신이다. 2012년 19대 총선에 경기 화성을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한 뒤 내리 3선을 했다. 노무현 재단 기획위원을 지냈고, 지난해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시절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다.
- 이 의원은 1990년대 후반 30대, 1980년대 운동권, 60년대생을 일컫는 ’386 세대'가 시대정신을 잃어가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그는 “386(세대)은 2000년대, 2010년대를 거치며 ’486′ ’586′으로 명칭을 바꿔갔다”며 “86세대의 생물학적 나이 듦의 표현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명칭의 변천과 함께 그들이 시대정신과 초심을 잃어버리고 기득권화되지 않았냐고 국민은 질문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008)
바. 이철희의 불출마 선언
- 더불어민주당에서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운동권 그룹 용퇴론이 공개적으로 터져 나왔다. 86그룹이자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용퇴론의 발원지라는 점에서 그의 말에 힘이 실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 이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86세대가 정치적 세대로 보면 다른 어떤 세대 못지않게 성과를 거뒀다. 그러면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 된 것”이라며 “지난 촛불과 탄핵이 ‘86세대가 이제는 물러날 때 됐다, 우리가 할 만큼 했다. 이 정도 일을 했으니 우리는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물러나도 된다’는 기점”이라고 했다.
- 1987년 항쟁을 이끌었던 86그룹이 2000년대부터 정치권에 유입돼 2016, 2017년 촛불 혁명과 탄핵 사태를 이끈 점은 높게 평가하지만, 후배 세대에 그 역할을 물려줘야한다는 의미다. 그는 “기득권화된 86세대가 사회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한 2030세대 청년층에게 답을 주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30세대가 직접 그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정치권이 길을 터줘야 된다”고 말했다.
- 이 의원은 이어 “86세대가 새로운 세대가 들어올 수 있는 산파 역할을 해 준다면 그 윗세대 중에도 자발적으로 물러나실 분들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86세대의 자발적인 용퇴가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동아일보 191119)
사. 4선 중진 우상호, 5선 송영길의 불출마 선언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2년 1월 25일 차기 총선 불출마 뜻을 재확인하며 당 쇄신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86그룹 용퇴론'에 호응했다.
- 우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며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송영길 대표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과 관련해선 "1999년 정계에 입문하여 5선 국회의원, 인천시장으로 활동했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볼 때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4선 중진인 우 의원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당내 86그룹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 참여하면서 2024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 우 의원은 "우리들이 비운 그 자리에 훌륭한 젊은 인재들이 도전하기를 바라며 적극적으로 돕겠다"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낮은 곳에서 정치 혁신과 민생개혁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 우 의원과 함께 86그룹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송 대표는 이날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당내 '86그룹 용퇴론'의 본격적인 신호탄을 쐈다. 이재명 대선후보 지지율이 견고한 정권교체론에 막혀 답보 상태에 머물자, 기득권 포기 차원에서 쇄신을 주도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해 이미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우 의원도 이에 호응하면서 다른 86그룹 의원들의 참여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4. 이념의 갈등, 진영 논리로 양극화된 대한민국 > 4-4. 15년 민주 진보개혁정권의 개혁 실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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