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정국’에서 나온 ‘언론개혁 요구’, 성찰의 기회다
일부 언론의 이런 반응은 시민들의 인식과 완전히 동떨어져있다. 서초동 집회에서는 검찰과 함께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젊은 기자들과 ‘시니어 기자’들 간의 갈등이 노출된 한겨레, 사모펀드 의혹 관련 핵심 증인 인터뷰 부실 보도로 내홍을 겪는 KBS 등, 이미 밖으로 드러난 언론계 내부의 사태들은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조국 보도’와 관련해 격렬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개혁 요구’가 터져 나오면 언론계에서는 ‘살아있는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을 견제하는 방식이, 언론이 쏟아낸 보도의 취재가 정당했는가는 그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살아있는 권력’이 대상이라고 해도 근거 없이 비난을 퍼붓고 의혹을 부풀린다면 언론의 사명을 빙자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공직자나 그 가족이란 이유로 언론이 무차별적으로 난도질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 지명(8/9) 후 약 두 달 간 물밀 듯 쏟아진 보도에서 오랜 기간 우리 언론계가 안고 있는 병폐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각 언론사의 논조나 보도성향, 언론이 제기한 수많은 의혹의 사실관계 등을 넘어서서 ‘조국 정국’을 통해 우리 언론계가 성찰해야 할 과제들을 살펴보자.
1. 공직자 가족을 대상으로 한 ‘먼지털이식’ 보도
‘공직자 검증’은 ‘일가족 파파라치 취재’가 아니다
첫째, ‘공직 후보자 검증’을 이유로 후보자의 가족들까지 ‘먼지털이식’ 취재하면서 후보자에게 ‘연좌제’를 뒤집어 씌웠다.
물론 공직 후보자는 엄밀한 검증 보도의 대상이며 그 가족의 경우에도 비리나 의혹이 있다면 응당 보도해야 한다. 하지만 그 취재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나 다름없는 선정성이 두드러지고 후보자 본인의 개입 여부가 전혀 없는데 모조리 ‘후보자 의혹’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 보도’에 입각한 태도가 아니다.
채널A <‘무거운 침묵’ 방배동 아파트>(10/3)는 조 전 장관 자택 앞에서 ‘날이 어두워지자 집에 불이 들어오고 창문도 열렸다’고 무려 ‘현장연결’을 해 보도했다.
매일경제 <조국 딸 오피스텔…거주자 주차장엔 차 10대 중 2대가 포르쉐>(8/21 기사 삭제) 등 많은 기사들이 주차장에 외자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국 딸은 외제차 타고 다닌다’는 허위 프레임을 보도했다.
조 전 장관 사퇴 후인 10월 16일에는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에서 조 전 장관이 웃고 있는 영상에 욕설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언론이 특정인에 욕설을 하는 것은 ‘검증 보도’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언론의 자격을 고민해야 할 수준이다. 비단 ‘조국 보도’뿐 아니라 이런 식의 ‘파파라치’ 보도, 선정적 보도 행태는 ‘클릭 수 장사’에 매몰된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악습이다.
‘공직자 가족 의혹 보도’가 ‘연좌제’가 되지 않으려면
2. 검찰 받아쓰기
언론은 검찰을 너무 믿는 것은 아닐까
둘째, ‘검찰 받아쓰기’ 관행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3. 의혹 보도의 완결성
수많은 ‘의혹 보도’, 탄탄한 취재는 기본적 의무
셋째, 의혹의 근거 및 사실관계 확인은 더 엄밀해야 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공직자를 검증하는 언론은 부득이 이른바 ‘스모킹 건’ 급의 확실한 증거가 없더라도 정황과 일부 증언, 간접적 근거로도 의혹 보도를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언론은 그렇게 해왔고 언론의 의혹 제기가 사실로 밝혀져 정의를 구현한 사례도 많지만 그 반대 사례도 많다.
조국 전 장관 관련 수많은 의혹 보도들 중에는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가 상당했다. 이는 간접적인 정황, 증거, 증언으로 의혹을 제기할 때도 다층적인 교차 검증과 더 다양한 근거 확보에 노력해야 하고, 흩어져 있는 정황들을 하나의 결론으로 도출하는 논리 구조에서 정합성 및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
이 때문에 특정인을 정치적 목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의혹을 확대하고 선정적 프레임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차후에 설령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애초 보도의 근거가 허술했다면 그 자체로 저널리즘의 차원에서 성찰할 필요가 있다.
부실한 공소장과 ‘과잉 수사’ 비판에도 언론은 질문하지 않았다
3일만에 급박하게 기소를 한 검찰의 공소장도 부실 논란에 빠졌다. 표창장에 기재된 ‘수여일’을 ‘위조일’로 규정한 부분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 “성명 불상자와 공모”라고 적었던 공소 핵심 내용을 열흘이 지나 “아들의 상장을 스캔하여 딸의 표창장을 위조”로 수정한 것은 사실상 범행 일시, 방법이 완전히 달라져 공소장 변경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경심 표창장 위조 의혹’은 보도량이 상당했으나 검찰의 공소장 관련 검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위조 의혹이 간접적 정황만으로 보도해야 할 사안이었다면 검찰 공소장의 부실함 역시 합리적으로 의심해 보도했어야 한다. 의혹이 나온 지 한 달 뒤에야 MBC <PD수첩> ‘장관과 표창장’(10/1)와 같이 검찰 발 정보 및 그간의 의혹 보도와 거리를 두고 의혹을 재검증한 보도가 나왔다.
전격적인 자택 압수수색과 3일만의 기소, 이후의 부실 논란으로 ‘검찰의 과잉 수사’라는 비판 여론이 컸으나 언론이 이를 외면했다는 사실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조 전 장관 가족 관련 의혹이 과연 자택, 학교, 투자증권회사 등 70여 곳에 이르는 방대한 먼지털이식 압수수색을 할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것인지, 합리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압수수색 등 검찰의 수사를 ‘중계’할 뿐, 그 수사의 적법성이나 적절성에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4. 특정 이슈에 쉽게 매몰되는 양적 불균형
‘조국 보도’의 양적 불균형 극심…‘언론 플레이’였을까
넷째, 우리 언론이 기본적인 균형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조국 보도’에서의 일방성, 보도의 전체적인 이슈 편중이 엿보인다. ‘대중이 관심 있는 사안이므로 조국 의혹을 보도한다’는 언론의 명분을 재검토해야 할 대목이 곳곳에 있다. 법무부 장관 자리가 매우 엄중한 사안이므로 언론이 집중 보도를 통해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었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장관 후보자 검증’ 차원에서 일어난 일인지, ‘낙마’를 목표로 이뤄진 의도적인 ‘여론몰이’인지 구분해 따져봐야 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7개 주요 일간지(경향‧국민동아‧조선‧중앙‧한겨레‧한국)의 ‘조국 의혹 단독 보도’(9/10~9/24) 총 75건의 출처가 상당 부분 검찰(30건)에 쏠려 있고 나머지도 ‘법조계’(12건), ‘자유한국당’(8건)이라는 점도 불균형에 해당한다. 이는 조 전 장관 측의 유불리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의혹 당사자인 ‘조 전 장관 측 관련인’을 출처로 한 기사는 2건에 불과했고 ‘웅동학원’이 출처인 경우는 아예 없었다. 좀 더 신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문건’을 출처로 한 단독보도 역시 2건에 그쳤다. 이 지점에서 언론인들은 ‘조국 전 장관 측에 반론을 물어도 답변을 하지 않는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표창장 위조 의혹과 관련해 반론을 내놓은 동양대 관계자들이 어째서 tbs 교통방송 <뉴스공장>에만 몰렸는지, 사모펀드 의혹에 있어 조 전 장관 측을 피해자로 규정한 김경록 차장이 KBS를 못 믿어 유시민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으로 갔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언론이 처음부터 더 다양한 취재원 확보와 반론 취재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말 그대로 ‘도배’를 해서는 안 된다
전체적인 뉴스의 편중도 유독 이번 ‘조국 정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보도‧시사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이 높은 종편 4사(JTBC‧TV조선‧채널A‧MBN)는 조 전 장관과 함께 다른 부처 인사 청문회가 이뤄졌던 8월 12일부터 9월 6일까지 오로지 조국 전 장관만 보도했다. 당시 7명의 장관급 인사가 이뤄졌으나 종편 4사 주요 시사 프로그램 11개 경우 7명 후보자 관련 총 방송 시간 8,480분 중 사실상 전부라 할 수 있는 8,453분(99%)을 모조리 조국 당시 후보자에만 쏟아부었다.
다른 후보자 뿐 아니라 아예 다른 이슈들도 덮었다. 8월 26일부터 9월 6일까지 종편 4사 11개 시사 프로그램은 총 방송 시간 7,126분 중 77.5%에 이르는 5,522분을 오로지 ‘조국’에 할애했다.
TV조선 3개 프로그램의 경우 이 비중은 무려 89.6%에 달했다. 이 시기 일본의 무역 보복 및 지소미아 종료,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관련 진상조사 결과 발표 등 굵직한 이슈들이 있었음을 감안할 때 정상적인 수치는 결코 아니다.
신문과 방송 뉴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 8월 9일부터 9월 4일까지 27일 간 5개 주요 일간지(경향‧동아‧조선‧중앙‧한겨레)의 사진 기사를 제외한 ‘조국 관련 기사’는 총 1,083건에 이르렀으며 보도량이 가장 많은 조선일보는 309건, 하루에 11건 꼴로 기사를 냈다. 7개 방송사(지상파 3사‧종편 4사)의 저녁종합뉴스도 같은 기간 총 923건의 ‘조국 보도’를 냈고 보도량이 가장 많은 채널A가 214건, 하루 8건 꼴로 보도를 냈다. 보통 하루에 25건 정도(스포츠‧날씨 제외)의 리포트를 내는 저녁종합뉴스에서 매일 1/3에 달하는 분량을 ‘조국’에 쏟아낸 것이다. 매우 이례적인 수치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지난 2018년 6월 지방선거 당시 4월 7일부터 6월 12일까지 67일 간 7개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의 지방선거 보도는 총 613건이었다. 기간이 절반도 안 되는 이번 ‘조국 보도’보다 300여 건이나 적다. 채널A는 당시에도 139건으로 보도량이 가장 많았는데 하루에 2건 꼴로 하루 8건 꼴인 ‘조국 보도’와 비교가 안 된다.
여기서는 또 다른 불균형도 엿보이는데 바로 ‘후보자 검증’에서 오직 ‘가족 관련 의혹’ 등 ‘도덕성 검증’에만 치중했다는 점이다. 5개 주요 일간지의 ‘조국 보도’ 총 1,083건 중 ‘사법개혁’ 등 ‘정책 검증’에 해당한 기사는 24건, 2.2%에 불과했다. 방송 뉴스 역시 총 총 923건 중 고작 20건, 2.2%를 ‘개각 발표 및 전문성 검증’에 할애했을 뿐이다.
대중의 관심을 이끄는 언론? ‘여론몰이’하는 언론?
이렇게 ‘조국 보도’에서 다방면으로 확인되는 불균형은 ‘대중이 관심을 두고 있으므로 보도가 많다’는 인식보다 ‘언론이 보도를 쏟아내면서 조국 의혹으로 대중의 관심을 끈다’는 시각이 더 설득력 있음을 보여준다.
때로는 대중이 먼저 관심을 보여 보도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아주 중대한 사안의 경우 언론이 보도를 내면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야 할 때도 있다.
‘법무부장관 후보자 검증’은 시민도 관심을 보이고 언론도 보도를 내야하는 사안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도 말 그대로 ‘후보자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을 때 가능한 평가다.
앞서 살펴봤듯이 검찰 발 정보나 일방의 주장을 검증 없이 받아쓴 기사, 의혹의 근거 및 취재가 부족했던 기사, 후보자 본인이 아닌 가족에 대한 광범위한 ‘먼지털이식’ 기사가 매일 같이 지면 및 뉴스를 뒤덮었다면 ‘언론이 의도적으로 조국 의혹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여론의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언론의 공적 책무에 따라 보도를 집중하는 것과 특정한 의도에 따라 이른바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조국 사퇴’는 끝이 아닌 ‘성찰’의 시작이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각각 다른 의미로 ‘조국 사퇴가 끝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언론에게 있어서도 다른 의미로 ‘조국 사퇴’가 끝이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로 하여금 그간의 보도 및 취재 관행, 습관이 과연 온당한지, 저널리즘에 부합하는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약자를 대변하며 시민 권익을 확대하는 언론의 공적 책무에 해당하는지 성찰할 때이다.
‘조국 사퇴’를 ‘승리’ 또는 ‘패배’로 받아들이는 언론이 있다면 특히 반성이 필요하다. 정치적 이슈에 있어 언론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 일부 언론은 그 여론이 정파적이라 일축하고 마는데, 그 정파성을 언론 스스로 이미 내면화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여야가 정쟁 과정에서 내뱉는 말들을 별다른 고민 없이 따옴표 쳐서 막말까지 받아쓰는 우리 언론의 습관에 비춰볼 때 ‘정파성’을 따질 자격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언론도, 시민도, 검찰도 무결점의 완벽한 주체들이 아니다. 다만 사회적 공론화를 꾀할 수 있는 ‘스피커’는 단연 언론이다. 그 스피커를 스스로의 성찰을 위해서도 쓸 수 있는지 언론은 증명해야 한다.
출처 : (사)민주언론시민연합 2019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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