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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政治)를 정리(整理)해 드립니다
2. 그러나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2-4. 부와 신분의 대물림으로 계층 사다리가 무너졌다

by organizer53 2023. 6. 27.

 

1.  부의 불평등 : 수저의 대물림

 

  • 미국·일본·중국의 경우, 성공에 실력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는 비율이 전체 세대에 걸쳐 균일한 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층은 4개국 중에서 가장 믿음이 강했고(70대 76%), 청년층은 4개국 중 가장 낮았습니다.(20대 51%) 이런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우리 국민들이, 특히 우리 청년들이 터무니없이 비관적이라고 봐야 할까요? 
  • 관련 학자들과 대화한 바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우리 사회가 역사적으로 부의 세습이 낮은 사회에서 높은 사회로 옮겨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국내 여러 연구에서 이동성이 낮아지고 세습이 강화되는 경향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직장인의 92%가 ‘수저계급론’을 현실이라고 답했습니다. 수저계급론을 부정한 8%의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이론적이거나 논리적인 근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런 현실이 싫어서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설문에서 자신을 ‘흙수저’라고 답한 사람이 66.5%였고, 노력만으로 흙수저가 금수저가 될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은 8.8%에 그쳤습니다. 그저 보통 사람들이 보는 현실이 이렇습니다.

 

 

  • 윤성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이 <재정학연구>에 발표한 ‘소득계층이동 및 빈곤에 대한 동태적 관찰’ 논문을 보면 소득 수준을 10개 분위로 나눌 경우 하위 분위인 1∼3 분위(하위 30%) 계층이 2007∼2015년 중 한 해가 지났을 때 빈곤 상태에서 벗어날 확률은 평균 6.8%였으며,. 반면 빈곤 상태를 유지할 확률은 평균 86.1%에 달했습니다.
  • 이 계층에서 다음해까지 빈곤상태를 유지할 확률은 2007~2008년 84.1%에서 2014~2015년 87.7%로 높아졌고, 기간을 2007∼2009년, 2010∼2012년, 2013∼2015년 세 구간으로 나눠서 보면 계층 유지 확률은 37.6%→41.8%→42.5%로 증가했지만, 상향 이동할 확률은 32.1%→30.1%→28.4%로 반대로 낮아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빈곤탈출 가능성이 적어진 것입니다.
  • 저소득층은 상향이동보다 하향이동의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7~2015년 2 분위와 3 분위가 각각 한 단계씩 상향 이동할 확률은 19.3%, 19%였지만, 반대로 한 단계씩 하향 이동할 확률은 22.7%, 19.1%였습니다. 반면 중위 소득층인 4∼8 분위 가구는 상향이동할 확률이 하향이동할 확률보다 더 높았습니다.
  • 한국 사회의 더 놀라운 사회현상은 세습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입니다. 고려말 정도전이 호남에 유배되면서 목격한 세습 귀족과 노예처럼 살아가는 무토지 농민의 극단적 분열의 세상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2019년 재벌닷컴 자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의 대주주 일가 또는 특수관계인 가운데 30세 이하의 나이로 상장 주식을 100억 원어치 넘게 보유한 '주식 부자'가 51명에 이르며,  보유한 주식 가치는 약 1조 8천743억 원으로 1인당 평균 368억 원을 보유했습니다. 
  • 이제 재벌 4세가 부모의 막대한 주식을 상속하여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반면에 빈곤층은 가난의 대물림을 통해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로 전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20대는 자신의 능력보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고 있으며, 소위 금수저와 흙수저로 사회가 분열되었다고 분노합니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자녀의 운명이 결정되는 세습 사회가 등장하면서 능력에 따른 자유로운 사회이동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 계층 상승의 주요 통로가 되는 교육 기회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결정되면서 균등한 기회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2010년 이후 ‘헬조선’이야말로 오늘의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극심한 불평등이 만든 사회적 비극이다. 

 

2.  교육의 불평등 : 신분의 대물림

 

 

  • 우리 사회는 줄세우기 식의 교육 시스템 덕분에 경제자본의 대물림이 쉽습니다. 부모가 경제자본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 자녀 교육에 돈을 쏟아부어서 국내외의 좋은 대학에 보내서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만들면 그들의 자녀는 경제자본을 확보한 계층이 됩니다. 
  • 한 연구에 따르면 소득계층 상위 50%인 아버지의 경우 자녀의 학력이 1년 증가하면 부(富)의 대물림 확률이  5.7~7% 증가한다고 합니다. 교육이 부의 대물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만일 자녀가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공부에 소질이 없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부모의 경제자본을 직접 자녀에게 물려주면 그만입니다.

 

 

 

  • 신한은행이 발표한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이 1천만원 이상인 가구의 자녀 1인당 총교육비는 1억 4천484만 원입니다.
  • 이는 월평균 소득이 300만 원 미만인 가구의 4천766만 원의 3배에 이르며, 또, 월소득 1천만 원 이상인 가구의 자녀가 해외 유학을 하는 경우는 41.7%인 반면 월소득 300 만원 미만인 가구가 자녀를 해외에 보내 교육을 시키는 것은 14.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 계층 사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었던 교육이 소득 계층의 대물림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3.  교육이 한국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고 있다

  • 많은 사람은 결과의 격차보다는 출발점과 과정의 불평등에 대해서 훨씬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소수 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성공이 봉쇄된 사회를 정당화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노력과는 무관하게 형성된 환경과 관련한 불평등을 기회의 불평등이라고 부릅니다. 교육 수준이 소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학자들은 세대 간 이동성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교육에 특별히 주목합니다. 
  •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때 소수만 누릴 수 있던 교육 기회가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지속적으로 보편화되면서 점차 많은 사람이 좋은 일자리와 소득 증대의 열매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고도산업화 시기의 경험입니다. 이때는 말 그대로 교육이 ‘중요한 평등기제’(great equalizer)로 작동했던 것이죠. 그런데 사상 최고로 교육 수준이 높아진 지금, 교육이 여전히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지 오히려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높은 사교육비, 강남으로 대변되는 교육 특구, 서울 소재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부유층 아이들의 비율 증대 등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 교육도 문제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취업 과정이 공정한지도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2011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은 교육 기회보다 취업 기회의 불공정이 더 크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 약자층에서 이런 성향이 두드러져서, 이들 계층에서 교육 기회와 취업 기회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믿는 비율은 각각 35%와 57%였습니다.
  • 우리 사회 교육불평등을 엿볼 수 있는 현상은 넘친다.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2020년 대학별 국가장학금 신청자 현황’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4년제 대학 재학생은 고소득층 비율이 39.5%, 저소득층이 30.1%로 나타났다. 그러나 서울 15개 대학으로 좁히면 고소득층 비율이 51.2%로 저소득층(23.9%)보다 2.1배 높았으며, 범위를 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한정하면 고소득층 비율이 56.6%로 저소득층(21.5%)보다 2.6배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대는 그 비율이 각각 62.6%와 18.5%로 3.4배 차이가 났다. “
  • 대학 입시가 개인의 노력보다는 부모의 경제적 소득 등 외부적인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들고 있습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었던 교육이  오히려 부모의 부를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촉매제, 수단이 되어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심화·고착시키고 있습니다.

 

 

 

4.  능력주의에 치우친 한국의 공정성

  • 공정성(公正性, fairness)을 문제 삼는 것. 그것은 사회적 자원이 얼마나 정의롭게 배분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불공정한 사회구조에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은 많으며, 그들은 그 구조를 유지하는데 모든 자원을 총동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 무엇을 할 것인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그려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공정성”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 그 공정성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불공정한 일을 보고 분노할 때, 그것을 시정하는 기준이자 원칙이 되는 공정성의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구성원 모두가 숙고하며 토론해야 하는 물음입니다. 
  • 2018년 발표된 「한국사회 공정성 인식조사 보고서」는 “한국 사람들 중 다수는 분배에 있어 산술적 평등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능력주의(meritocracy)를 실질적 공정성으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입니다. 보편적 교육권을 명시하고 있지만 ‘능력에 따라’라는 단서가 달려 있습니다. 이 조항을 보면 능력주의가 교육과 관련해서도 한국사회를 규율하는 핵심 가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5.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만드는 핵심요소

  • 피에르 부르디외는  부자는 단지 화폐만 상속하지 않고, ‘능력’까지 상속한다. “능력이나 재능 자체는 시간과 문화자본이 투여된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때에 따라서 교육적 성취의 룰마저도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능력주의 시스템, 즉 ‘공정성’을 고집할수록 불평등은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 오늘날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라 지위나 재화가 배분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라는 의미로 통용됩니다. 
  • 한국에서 능력주의는 매우 긍정적인 개념으로 능력주의의 ‘과소’가 문제시되었을 뿐, 그 과잉이 사회 문제로 포착된 일은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지나치게 위험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들,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입니다. 능력주의는 오늘날 한국사회 불평등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일 뿐 아니라 ‘공정’과 ‘정의’를 가장해 민주주의의 기반을 침식하기까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