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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政治)를 정리(整理)해 드립니다
5. 이념의 갈등, 진영 논리로 분열된 대한민국/5-4. 극우 정당으로 치달리고 있는 국민의힘

5-4-3. 태극기 집회의 시작, 박근혜 탄핵 반대

by organizer53 2025. 2. 3.

태극기 집회의 시작, 박근혜 탄핵 반대

 

1. 박근혜 탄핵과 태극기 집회의 출범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은 즉각적인 반격을 시도하며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를 결성했다.

탄기국은 기존의 보수단체 및 극우단체들이 연합한 조직으로, 대표적으로

  •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 극우단체
  • 기타 보수 성향 단체들

이들이 하나로 뭉치며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즉 태극기 집회가 시작되었다.

 

2. 친박계 정치인들의 태극기 집회 합류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탄핵 문제를 두고 심각한 내분에 빠졌다. 내부에서는

  1. 탄핵을 적극 추진하는 세력
  2. 탄핵을 반대하는 친박계 세력
  3. 탄핵 찬성도 반대도 명확히 하지 않고 친박과 거리를 두는 세력

이렇게 세 그룹으로 분열되었고, 친박 핵심 인사들은 당내에서 탄핵정국을 야기한 책임자로 몰려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등이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았고, 이들은 당을 떠나 태극기 집회에 합류했다.
  • 이들은 집회에서 군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정치적 재기를 노렸다.
  • 특히, 윤상현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탄핵 반대 토론회에 극우 인사들을 초청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처음에는 보수 정치인들조차 태극기 집회를 위험한 돌출 행동으로 평가하며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태극기 집회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며 보수 정치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3. 태극기 집회의 확산과 극단적 폭력성

2017년 2월 10일, 새누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24명(대표적으로 나경원 의원)이

  • 광장정치를 부추기지 말자”라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며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모두 참석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 그러나 친박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극기 집회에 계속 참여했다.

이후 윤상현, 김진태 의원을 중심으로 태극기 집회 참여가 더욱 활발해졌고, 이들은

  • 군중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 결국, 태극기 집회를 기반으로 김진태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극우 정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임박하면서 태극기 집회의 규모는 더욱 거대해졌다.

  • 2017년 3월 1일, 태극기 집회는 역대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 처음에는 극우단체들이 중심이었지만, 점점 60~70대 고령층, 중산층, 사회지도층 출신까지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 집회 현장에는 각종 대학교와 고등학교 이름이 적힌 깃발이 등장하며 조직적 성격이 더욱 짙어졌다.

이 시점에서 태극기 집회는 단순한 정치적 집회를 넘어, 보수 정치를 뒤흔드는 강력한 여론의 진원지가 되었다.

 

4. 헌재 탄핵 결정과 극단적 폭력 사태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이날 안국역 사거리 일대는 그야말로 무법천지로 변했다.

  •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버스를 향해 돌진하며 폭력적으로 시위했다.
  • 일부 시위대는 경찰버스 위에 올라가 차량을 흔들며 탈취를 시도했다.
  • 방송 차량에서 철제 스피커 장치가 떨어져 한 명이 사망했고, 이후 충돌이 격해지면서 총 4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사건은 태극기 집회의 폭력적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5. 태극기 집회의 정치권 흡수와 보수정당과의 결합

박근혜 탄핵 이후 치러진 2017년 대선에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였던 홍준표는 태극기 집회의 영향력을 적극 활용했다.

  • 2017년 4월 15일, 부산에서 열린 ‘한반도 안보기원 부산 애국시민대회’에서 태극기 집회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 4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선거 유세는 태극기 집회 참여 단체들이 대거 결집하면서 마치 태극기 집회 현장처럼 연출되었다.
  • 서울역광장은 1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던 곳으로, 선거운동을 태극기 집회 분위기로 끌어가는 전략이 사용되었다.

홍준표 후보는 유세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한줌도 안 되는 좌파들이 조직적으로 득세해 촛불사태를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정치 투쟁에서 우리 우파가 진 것이다.
우리가 다시 이겨야 할 때가 5월 9일이다.”


이 발언은 보수정당이 태극기 집회를 제도권 정치로 흡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 처음에는 보수 정치권조차 태극기 집회를 거리의 극단적 운동으로 간주했지만,
  • 결국 태극기 집회 세력을 주요 지지층으로 인정하며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이후 태극기 부대는 보수정당 내에서 점점 더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극우 정치 세력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보수 정치권이 탄핵 이후의 대안 세력으로 태극기 부대를 받아들이면서, 보수정당과 극우세력의 본격적인 동맹이 시작된 것이다.

 

 

출 처 :  ChatGPT 4.0,     유튜브 곰곰이,  https://youtu.be/_HMdCHhQdtg?si=E5OYeEiAjs-spH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