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군사정권과 일본 극우 세력의 결탁: 친일의 역사 2편
1. 서론
지난 편에서는 일제강점기 친일 세력이 해방 이후 지배층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이 일본 극우 세력과 결탁하고 영향을 받은 과정을 다룹니다.
2. 박정희와 일본 극우 세력의 연결
① 박정희와 만주군
-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창씨개명을 하여 **‘타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 당시 그는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하겠다”**는 의미의 맹세를 남기며, 일본군에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 해방 후 남로당에 가입했다가 체포되었지만, 백선엽 등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한국전쟁 때 다시 군으로 복귀합니다.
- 4.19 혁명 이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일본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구축합니다.
② 한일 협정과 일본의 자금 지원
- 1965년 박정희 정부는 한일 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본으로부터 5억 달러를 지원받았습니다.
- 하지만 이는 원래 한국이 요구했던 금액(20~28.5억 달러)보다 한참 부족한 액수였습니다.
- 더욱이, 협정에서 일본의 강제 합병이 불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지 않았고,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 2014년 공개된 미국 CIA 보고서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은 일본 기업들로부터 6,600만 달러를 지원받아 공화당 창당 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 이후 한국 보수 정당은 일본의 재정적 지원을 기반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3. 일본 극우 세력과 박정희 정권의 협력
①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 **기시 노부스케(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으로, 일제강점기 만주국 경제를 총괄했던 A급 전범 용의자였습니다.
- 전범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사면 후 일본 자민당을 창당하며 일본 정계를 주도했습니다.
- 박정희는 쿠데타 직후 기시 노부스케에게 친서를 보내 한일 협정 체결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1961년 일본 방문에서 직접 기시 노부스케를 만나며 경제 협력을 추진했습니다.
② 한일 경제 협력의 구조
- 한일 협정 이후, 일본 기업들은 한국 시장에 대거 진출했습니다.
- 한국 대기업들은 일본으로부터 설비와 기술을 구매하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조립 생산 후 수출하는 구조를 갖추었습니다.
- 그러나 핵심 기술과 부품 공급을 일본이 독점하면서, 한국이 수출을 많이 할수록 일본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경제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 이를 **‘가마우지 경제’**라고 부릅니다. (가마우지 낚시에서 유래된 표현)
- 1965년 이후,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으며, 2018년까지 누적 적자는 708조 원에 달했습니다.
4. 전두환 정권과 일본 극우 세력
① 세지마 류조와 전두환
- 세지마 류조는 일본 육사 출신으로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참모였으며, 박정희와 같은 시기 만주에서 활동했습니다.
- 전쟁 후 일본으로 돌아와 경제계에 진출하여 대기업 ‘이토추 상사’의 성장에 기여하며 일본 정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 1980년 전두환은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을 통해 세지마 류조와 연결되었고, 세지마는 전두환에게 서울 올림픽 유치를 제안했습니다.
- 일본은 원래 1988년 올림픽을 나고야에서 유치하려 했지만, 세지마 류조의 개입으로 한국이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② 일본 차관 도입과 경제 종속
- 전두환 정권은 경제 개발을 위해 일본에 60억 달러 차관을 요구했지만, 결국 40억 달러만 지원받았습니다.
- 당시 일본 총리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와 아베 신타로(아베 신조의 아버지)**가 협상에 개입했습니다.
- 이 과정에서 세지마 류조가 일본 정부와 한국 정권을 연결하는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5. 군사정권과 일본 극우 세력의 관계 지속
① 노태우 정권과 한일 관계
- 노태우 정권 역시 일본 극우 세력과의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 특히, 노태우는 일본 자민당 모델을 참고해 보수 정당의 조직 구조를 개편했고, 이는 이후 한국 보수 정당의 형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② 한일 의원 연맹과 정치적 연결
- 한국과 일본 보수 정치인들은 ‘한일 의원 연맹’을 조직하여 정기적으로 협력했습니다.
- 김종필, 정일권, 백태준, 권익현 등이 번갈아가며 회장을 맡았으며, 일본 극우 세력과 한국 보수 정당의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6. 결론
- 박정희에서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은 일본 극우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경제적, 정치적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일본은 이를 통해 한국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는 구조를 만들었고, 한국의 보수 정당들은 일본의 지원을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 현재도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일본 극우 세력과 연계된 인물들이 거론되는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출 처 : ChatGPT, 유튜브 곰곰이 https://youtu.be/mx8F-fHrJQY?si=7fzAvRyA6bW33W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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