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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MY 시사 특강/20-3. 유튜브 시사 특강

친일파와 독재자를 지켜주며 2인자를 노리는 윤상현의 정치 (1)

by organizer53 2025. 3. 1.

윤상현 의원의 정치적 행보와 가계 배경

고도의 정치행위와 사법 심사

 내란 사태 이후 국회에서 충격적인 주장이 나왔다. 이러한 발언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 나온다는 것이 놀랍다. 이후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고,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는 데 가장 앞장선 인물이 윤상현 의원이었다.

윤 의원은 남태령에서 차벽에 막혀 농성을 벌이던 농민과 시민들을 향해 “몽둥이가 답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국민의힘이 집단적으로 구 정당화되는 가운데, 그는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그의 정치적 행보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윤상현 의원의 출생과 성장 배경

윤상현 의원은 1962년 충남 청양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윤광수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 출신이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들은 여러 지역을 전전했으며, 청양에서 수원, 대전, 평택을 거쳐 서울 동작구에 정착하게 되었다.

윤상현은 영등포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81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계열에 입학했다. 그의 집안은 군 장교 출신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집안이었다. 그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놀라운 인물과 연결된다.

Chapter 1: 친일파 할아버지 윤종화

윤상현 의원의 작은할아버지인 윤종화는 ‘친일명사전’에 등재된 대표적인 친일 인물이다. 그는 남도 공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사가고등학교를 거쳐 1931년 졸업했다. 이후 규슈제국대학 법문학부 법과에 입학하여 1934년 학위를 받았다.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해 식민지 수탈을 본격화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윤종화는 경상남도 군수로 부임해 일제의 식민지 수탈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중일전쟁 당시 친일 행적을 기록한 **‘진하사변 공적조서’**에는 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이후 그는 계속 출세 가도를 달려 경찰 고등관이 되었고, 1940년에는 경시로 승진했다. 경시는 조선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직급이었으며, 임명된 사람은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윤종화는 조선인 최초로 경성부 종로경찰서 서장에 임명되었으며, 그의 부임 소식은 1943년 10월 1일자 **‘매일신보’**에 보도되었다.

그는 1943년 황민화운동 추진위원회 고문이 되었고, 같은 해 국민총력경성부정경찰부 경찰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이 직을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일제의 정책을 수행했다. 그러나 광복 후 그는 역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소련군이 주둔한 황해도에서 체포된 이후, 중국 훈춘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기록만 남아 있으며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1949년 반민특위에서 그는 소재 불명으로 기소중지 처분을 받았고, 처벌을 피했다.

Chapter 2: 군부 독재와 연결된 가족사

윤종화가 전국적 권력을 행사했다면, 그의 형 윤종욱은 청양군 청양면의 유지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청양면 협의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해방 이후에도 청남 의용소방대장, 청남면장, 청남우체국장 등을 역임했다.

윤종화의 아들 윤석수는 박정희 정권이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창설한 중앙정보부에서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그는 1981년까지 20년 동안 중앙정보부에 몸담았으며, 이후 전두환 정권이 창당한 민주정의당에 참여해 사무차장까지 올랐다. 결국 그는 11대 국회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즉, 윤상현 의원의 집안은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활동을, 군부독재 시기에는 정권에 충성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한 집안이었다.

Chapter 3: 정치 가문의 후손, 윤상현

누군가는 “가문에 친일파가 있다고 해서 후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후손이 정치에 뛰어들었다면,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입장과 역사 인식은 반드시 검증되어야 한다.

윤상현 의원은 이러한 집안 배경 속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정치권으로 진출했다. 그의 정치적 행보를 살펴보면, 단순히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가문의 전통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가 어떤 태도를 유지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결론

윤상현 의원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친일 행적을 지닌 가문의 후손이며, 군부독재 정권과도 깊이 연결된 정치 가문에서 성장했다. 그의 정치적 행보와 발언들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그의 집안이 걸어온 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그가 “몽둥이가 답이다”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려면, 그의 성장 과정과 가문이 어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존재해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상현 의원이 과거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그리고 현재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출 처 :  ChatGPT 4.0,  유튜브 곰곰이  https://youtu.be/9iAwUORoRio?si=SSJGaFlpeb8jM21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