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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政治)를 정리(整理)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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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6. 냉전과 동서 데탕트 그리고 7.4 공동성명 냉전과 동서 데탕트 그리고 7.4 공동성명 권오중 / 2019-01-09 제2차 세계대전은 ‘베르사이유 체제’라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무너뜨렸다. 사실 무조건 항복이 아닌 상태에서 이뤄진 베르사이유 조약은 연합국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약으로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추축국들에게 전적으로 책임과 배상을 요구한 불평등한 조약이었다(실제로 연합국들은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 지역을 점령하지 않았다). 그래서 1920~1930년대 초반에 걸친 베르사이유 체제 속에서 추축국들은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1929년 세계경제대공황이 발생하면서 독일(나치독일)의 동맹국들이 더 이상 베르사이유 조약을 이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서, 독일(바이마르 공화국)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당.. 2023. 12. 22.
8-5-15. 5.16 군사정변의 원인 5.16 군사정변의 원인 권오중 / 2018-12-24 4.19를 통해 이승만-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이후, 1960년 6월 15일에 소집된 국회는 대통령 중심제를 내각제로 대체하기로 의결하였다. 대통령은 여전히 국가원수로서 존재하지만, 정치적 권력은 의회(민의원과 참의원)로 이전되었고, 의회를 통해 총리가 정부를 구성하는 구조였다. 이는 민주당이 한민당 시절부터 추구해왔던 영국식 민주주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실시된 1960년 7월 27일의 총선을 통해 상원 격인 참의원 58명과 하원 격인 민의원 233명이 선출되었다. 민의원 233명 중 과반인 117명이 민주당 소속이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4.19를 통한 민주당의 집권이 국내 정치에서 민주화의 시작이고, 국민 모두가 환영했던 사건이었다고.. 2023. 12. 21.
8-5-14. 4.19, 아웃사이더의 혁명 4.19, 아웃사이더의 혁명 권오중 / 2018-12-13 1960년 4월 19일의 시민혁명은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성공했던 민중 혁명이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12년에 걸친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불만이 국민에게 쌓여 갔던 상황에서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의 부정(이승만 대통령 85%, 이기붕 부통령 73%)이 “4.19 혁명”의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기붕의 자살(4월 28일)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하와이 망명(5월 29일) 그리고 자유당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4.19 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목적으로 하였을 뿐, 대한민국의 정치 체제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1955년 한민당에서 민주당으로 개명).. 2023. 12. 20.
대전환의 시대, 사회개혁의 조건 지금 우리는 매일 역사의 강을 건너고 있다. 70년간 지속돼 온 적대와 대립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2018년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 시대가 동트는 것을 예감했다면,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는 구시대가 저무는 것을 목도했다. 분명 대전환의 시대이다. 해방 이후 한반도를 얼어붙게 한 강고한 냉전 체제가 허물어지면서, 평화 체제가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바로 이러한 ‘대전환’의 증거이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정치 지형의 변화가 아니라,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지난 7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구질서가 무너졌고, 구세력이 수명을 다했으며, 구시대가 끝났음을 뜻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번 선거 결과는 냉전 해체라는 한반.. 2023. 12. 20.
8-5-13. 휴전조약과 제네바 한국평화회담 휴전조약과 제네바 한국평화회담 권오중 / 2018-11-29 1951년 6월 23일에 UN 주재 소련대사 말리크(J.A. Malik)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대한 휴전을 제안한 이후 2년여의 지루한 협상 끝에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공산진영(중국과 북한) 사이에 휴전조약이 체결되었다. 말리크의 휴전제안은 서방진영과 일본과의 평화조약(1951년 9월 8일)을 저지시키려는 의도였지만, 이는 미국에게 거부되었다. 하지만 지루한 전쟁의 지속은 미국의 국내 여론을 악화시켰고, 전쟁의 종결을 공약한 공화당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취임(1953년 1월)과 스탈린 사망 (1953년 3월)은 자연스럽게 공산진영과 자유진영 간의 휴전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또한 대미 강경자세를 견지했던 전쟁의 당사국 중국도 더 .. 2023. 12. 19.
8-5-12. 6.25 전쟁과 한반도의 2차 분단 6.25 전쟁과 한반도의 2차 분단 권오중 / 2018-11-22 한반도의 1차 분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구도에 의해 등장했던 포츠담 체제의 동아시아적 결과였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포츠담 체제는 6.25 전쟁으로 인하여 종식되었다. 6.25 전쟁은 포츠담 체제로 시작된 냉전의 정점이었던 사건이었다. 북한정권은 이 전쟁을 민족 통일전쟁 혹은 민족 해방전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외부의 시각에서 이 전쟁은 “시험전쟁” 혹은 “대리전쟁”으로 인식되고 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된 이후, 미국과 자유진영은 공산주의 진영이 의도하는 팽창의 최대치를 확인하고 싶었고, 공산진영도 역시 자신들의 도발에 대한 자유진영의 대응수위를 확인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결국 6.25 전쟁은 제한된 범위에서.. 2023. 12. 18.
8-5-11. 38°선 획정과 한반도의 1차 분단 38°선 획정과 한반도의 1차 분단 권오중 / 2018-11-08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차례에 걸친 분단과정을 겪었다. 한반도의 1차 분단은 일본의 항복이후 한반도에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지상군 작전권을 38°선을 경계로 나누었던 것이 단초가 되었다. 이는 포츠담 조약이후 포츠담 체제의 범주(미국과 소련 간 이념의 대립)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또한 2차 한반도 분단은 6.25 전쟁 이후 휴전조약에 따른 휴전체제인데, 1차와 2차 분단의 차이점은 분단의 국제법적 책임국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구상된 것은 아니었다. F. 루즈벨트의 구상에 따라 해방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신탁통치 대상이었다. 그러나 1945년 5월 8일 나치독일이 항복하자, 태평양에서도 .. 2023. 12. 16.
8-5-10. 신탁통치 계획과 대한민국의 건국 신탁통치 계획과 대한민국의 건국 권오중 / 2018-10-25 해방 한국에서 분단의 출발점은 제2차 대전의 종전과 동시에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것이지만, 실제로 분단이 기정사실화 된 것은 미-소 공동위원회의 결렬이었다. 그리고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을 통해서 분단은 확정되었다. 한국이 해방되었다는 것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것뿐이지 한국이 독립을 쟁취했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즉 일본의 패망과 한국의 독립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 이유는 그 당시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단지 일본의 지배지역이었을 뿐, 연합국의 승전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정을 국제법적으로 인정하는 정부는 장개석의 중국 국민당 정부 뿐이었다. 미국 국무성 자료집(FRUS) ("The Far East 19.. 2023. 12. 15.
8-5-9. 대한민국 사회주의 정당의 역사 그리고 PD와 NL의 노선차이 대한민국 사회주의 정당의 역사 그리고 PD와 NL의 노선차이 권오중 / 2018-10-18 유럽에서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자유주의 혁명은 왕족과 귀족 중심의 신분제 사회에서 평민이 사회의 주체가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자유주의 혁명의 주체인 부르주아들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고,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 생산과 자본의 성장이 이루어졌다. 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사적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생산수단(자본)의 사적 소유와 자유경쟁을 수단으로 삼는 방식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적 경제체제, 곧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자연스럽게 부의 집중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부의 재분배를 요구했던 것이 19세기에 발생한 사회주의이다. 19세기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의 여러 현상.. 2023. 12. 13.
8-5-8. 대한민국 보수정당(자유당~자유한국당)의 계보 대한민국 보수정당(자유당~자유한국당)의 계보 권오중 / 2018-10-10 친일 지주 정당 한민당에서 출발한 더불어민주당에 대항하는 대한민국의 제1야당은 자유한국당이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이 진보세력이고, 자유한국당이 보수세력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은 이 양대 정당 모두 보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민당(민주당)계열이 진보세력으로 인식된 이유는, 이들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크게 이들의 대북정책과 경제정책에 기인한다. 원래 한민당은 친일 지주 세력이 주축(김성수, 김병로, 송진우, 이철승, 임영신, 유진산, 김준연, 장덕수, 이활, 윤보선, 윤치영, 김도연, 조병옥 장택상, 이인, 허정, 김약수, 이기붕 등)이.. 2023.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