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다 됐다. 여직원들이 1 대 1 사진 촬영을 요청할 때마다 싫은 기색 없이 응했다더라.”
지난달 22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하 존칭생략)이 참석한 춘천지검 속초지청 개청식에 다녀온 한 검찰 간부는 이 같이 전했다고 한다.
법무부 장관은 정무직 공무원이다. 검사 출신이 많이 임명되지만 검사 신분은 아니다.
정무직 공무원 |
선거로 취임하거나 임명할 때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공무원. 고도의 정책결정 업무를 담당하거나 이러한 업무를 보조하는 공무원으로서 법률이나 대통령령(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의 조직에 관한 대통령령만 해당한다)에서 정무직으로 지정하는 공무원(국가공무원법 2조 3항 1호) |
한동훈이 장관에 취임한 지 240일이 넘었다. 취임식 영상만 유튜브와 방송을 통해 수백만 명이 볼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았다. 그는 취임한 뒤에는 법무부 직원이 장관의 관용차 문을 열어주는 의전을 없애고, 장관‘님’ 호칭을 없애는 등 눈에 띠는 행보를 이어갔다.
간결하고 명료한 말의 힘도 ‘한동훈 팬덤’을 낳는 데 기여했다.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범죄자뿐입니다”, “검찰과 경찰은 부패범죄를 제대로 수사하라고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겁니다.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등의 말이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아직 한동훈이 정치를 하겠다는 선언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에선 이미 여권 유력 대선 주자 1,2위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가 국민들을 대하는 모습도 정치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장 시절 여론조사에 포함되자 “여론조사에서 빼달라”고 했다. 하지만 한동훈은 이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 아직 출마표를 주머니 안에 넣어두고 있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동훈 동기 “지금 보면 알 수 없어”
“검찰에서 나가면 더는 공직에 있고 싶은 생각이 없다.”
현 정부 출범 전인 2021년 하반기. 사석에서 그에게 정치권과 주변에서 나오고 있는 정치권 출마 권유에 대해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고 하는 게 “귀찮다”고도 했다.
그가 요즘 자신의 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지난주 한동훈과 친한 대학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적으로 내가 아는 한동훈은 절대 정치 안 한다. 철학도 안맞고 지역구 관리하면서 술 마실 사람이 아니잖나. 그런데 요즘 보면 ‘야 이거 점점…’ 이런 생각이 든다. 윤 대통령께서도 안 하신다고 했는데 흐름을 따라갔다. 이 양반 지금 얘기해보면 전혀 생각 안하고 장관 열심히 한다고 한다. 몇 달 전에 물었을 때도 안 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알 수 없다. 총선 나가는 게 아니고 (대선 직행 등) 다른 길도 있는 분위기다. 한동훈이 정치 감각은 있고 말을 귀에 딱딱 꽂히게 하는 걸 잘한다. 물 만난 거다. 하지만 스타일이 은근히 게으르고 자유로운 걸 좋아하니까. 일하다가 나가서 자유롭게 사는 걸 갈구했는데 본인한테도 예상 못한 송사도 생겼고, 장관 끝나고 나갈 때 상황에 따라 봐야 될 것 같다. 윤 대통령이 그냥 놔줄지도 관건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약점
‘정치인 한동훈’의 약점은 뭘까. 한동훈은 검사 시절 수사에 ‘얄짤(’일절없다‘는 말에서 변형된 말로 표준어가 아니지만 ’봐주지 않는다‘는 뜻의 신조어로 등록)’이 없었다.
원래 특수부 선배 검사들은 “혐의의 70%만 수사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혐의 중 주요한 것만 하고 모든 것을 다 털털 털어 수사하지 말라는 뜻이다. 탈탈 털면 상대방이 납득하지 못하고 반발하기 때문이다. 음주운전 또는 신호 위반에 적발됐을 때 대부분 항의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왜 저만 갖고 그러세요.”
만약 하루 종일 경찰이 내 뒤를 쫓아다니면 누구라도 똑같이 반발할 것이다.
한동훈은 100% 수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조국이 ‘멸문지화’를 거론하고 야당 지지층이 거세게 항의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수사를 했던 기업인이나 판사 등은 한동훈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을 수 있다. 정치의 영역에선 대화와 타협, 갈등 해소, 포용과 용서를 이뤄낼 줄 알아야 한다.
엘리트 법조인 등에 둘러싸인 인간 관계도 한계라면 한계다. 정치권에선 그간 많은 서울법대 출신 정치인들이 대선에 줄줄이 실패한 것을 두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거나 민심을 읽지 못한다는 등 이유로 분석했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 그 징크스를 깨고 이번에 처음 탄생했다.
정치인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갈등을 조정하는 게 일이다. 하지만 스타일상 그게 쉽지도 내키지도 않을 것이다. 당장 법무부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들린다.
장관 취임 이후 기존에 간부회의와 확대간부회의 등을 대거 줄였다. 기존 법무부는 실국장 이상 등 간부들이 참여하는 간부회의와 기획검사 및 주요 선임 보직자들도 함께 참여하는 확대간부회의 등 주2회에 걸쳐 간부회의가 이뤄졌거든. 그런데 장관 취임 이후로 일주일에 간부회의와 확대간부회의를 포함해 전체 회의를 한 번만해. 그 중에서도 절반은 서면 회의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어 한달에 사실상 2번 대면회의를 하는 거지. 그래서 다른 간부들끼리도 서로 만나는 기회가 줄었다. 직원과 밥도 거의 안 먹는다. 대신 장관은 매일 아침 출근 후 자신의 최측근인 권순정 기획조정실장, 신자용 검찰국장과 3인 회의를 하거나 신동원 대변인과 이노공 차관까진 참여하는 5인 회의를 매일 진행해. 외부 사람들과도 만나 목소리를 들어야 되는데 잘 소통하지 않는다. 정치하려면 밥도 먹고 스킨십도 해야 되는데 말이야. - 지난해 9월 한 법무부 고위간부
싸가지와 ‘얄짤’은 종이 한 장 차이
정치권에선 한동훈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필자는 9일자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광화문에서/황형준]한동훈이 거울삼아야 할 유시민의 ‘싸가지’
조용필이 매일 무대에 오를 필요가 없다. 마지막에 등장하면 된다. 매번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나설 필요가 없다. 말을 아낄 필요가 있다. 특히 국민과, 언론과 싸우려 해선 안 된다. 품을 줄도 알아야 한다.
‘정치인 한동훈’은 자신의 몫
정치권에선 △국민들에게 강한 임팩트(인상)를 주거나 △스토리가 있고 △고정 지지층 또는 당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대선 주자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운도 중요하다. 김종필 박찬종 고건 문국현 황교안 등이 대권가도에서 미끄러진 것은 이것 중 1~2가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동훈은 일단 임팩트와 ‘잘나가던 검사가 한직을 떠돌게 된’ 스토리, 국민의힘 지지층 등 고정 지지층을 탄탄하게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유명세를 치를 ‘깡다구’와 돌파력이다. 그만큼 권력의지는 물론 정치에 대한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아직 한동훈은 이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다. 검사와 법무부 장관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할지, 정치인으로 새 출발할지 그의 결단과 향후 정세에 달려 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2023. 2. 2.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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