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시절, 모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식당 주인에게 인사를 하며 수행과장을 가리켜 ‘이 친구도 고향이 전주입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NY를 수행하는 과장과 식당 주인의 고향 모두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수행과장은 종일 이 얘기를 자랑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소소한 일화이지만, 무심한 듯했던 직장 상사가 불쑥 던진 자신에 대한 관심을 발견하게 되면 거기서 오는 감동은 꽤 큰 모양입니다.” - <이낙연은 넥타이를 전날 밤에 고른다>, 양재원 지음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의 의원실에서 오래 근무한 그의 측근인 양재원 전북도 디지털소통팀장은 2020년 1월 발간한 자신의 저서에서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해 일본어인 ‘츤데레’(ツンデレ)라는 표현을 썼다. 츤데레는 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에 ‘훈장님’, ‘엄중 낙연’ 등 별칭 붙어
“자네,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나? 대학은 어디 나왔나? OO대 출신 맞나?”
기자 시절 이 전 대표는 후배들이 쓴 기사에 대해 이 같은 지적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당신이 고등학교, 대학이라도 마쳤으면 기사를 이렇게 쓸 수가 있냐’는 질책이었다고 한다. 그의 직설적인 화법에 혹자는 모멸감을 느꼈다.
이 전 대표의 밑에 있던 기자 후배들은 그의 꼼꼼함과 치밀함에 ‘학을 뗐다’고 한다. 기자 시절부터 원고지 200자 5장의 기사를 쓰면 1000자를 딱 맞출 정도로 완벽주의적인 성격이었다. 동아일보 도쿄특파원을 지낸 그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이 팀은 우승한 날 밤에 모여 그 다음 시즌을 계획한다는 것이다. 그는 넥타이도 전날 밤에 고른다고 하지 않은가.
특히 글에 대해 엄격했다. 의원 시절, 작은 지역 언론사의 창간기념일 축사 초안을 보좌진이 써서 이 전 대표에게 가져갔다. 보좌진이 쓴 ‘지역 최고의 언론사’라는 표현을 본 그는 “이 언론사가 최고의 언론사면 자네 얼굴이 장동건 닮았다는 것과 같다”는 지적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상대가 가진 고유의 장점을 찾아내 칭찬하려는 노력이 게으르니 허위의 과장된 표현이라는 쉬운 방법으로 상대를 축하하려 든다는 취지로 꾸짖었다고 한다.
그는 혼낼 때는 복도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호통을 치며 보좌진의 눈물을 쏙 빼놓을 정도였다고 한다. 옛 보좌진은 “중저음에 목소리가 커서 호랑이굴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소리에서 오는 공포감이 크고 머리가 새하얘지게 된다”고 말했다.
전남지사였던 그가 총리로 발탁되자 깐깐하고 엄한 도지사가 떠나니 전남도 직원들이 환호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문재인 정부 ‘군기반장’이었던 총리 시절엔 “총리에게 보고하러 가는 게 무섭다” “장관은 물론 고위공무원들이 언제 질책을 받을지 몰라 긴장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많았다.
“공직자는 4대 의무(국방, 근로, 교육, 납세) 외의 ‘설명의 의무’가 있으며, 이에 충실하지 않으면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 - 2017년 8월, 차관급 인사 임명장 수여식에서
2020년 총리를 마치고 당에 복귀한 뒤로는 ‘엄중 낙연’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진중하고 안정감 있지만 가르치려고만 하는 ‘꼰대’ ‘호랑이 훈장님’ 이미지 등도 반영됐다.
● 아들에게도 ‘엄부(嚴父)’
그는 후배나 아랫사람뿐만 아니라 실제 아들에게도 ‘엄부(嚴父)’였다. 외동아들인 이모 씨(41)는 2012년 12월 국립춘천병원 레지던트 생활을 앞두고 아버지 몰래 출퇴근용으로 외제차 ‘아우디’를 구입했다. 뒤늦게 재산신고 과정에서 이를 알게 된 이 전 대표에게 크게 혼이 났고, 8개월 만에 차를 팔고 국산차를 샀다고 한다.
2018년 3월 총리 시절 모친상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 전 대표를 포함한 7남매는 2007년 ‘어머니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펴냈는데, 당시 조문객들에게 이 책을 나눠드렸다. 장례식 마지막 날 새벽, 빈소를 정리하는 중에 이 전 대표는 장례식 도우미들에게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하며 감사를 표시했다. 그걸 본 이 전 대표의 조카들이 똑같이 사인을 받고 싶어 아들 이 씨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엄한 삼촌에게 직접 부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날도 이 씨는 아버지에게 “장례식장에서 가족들끼리 사인이나 받고 있어야겠냐”며 혼났다고 한다.
● 품격과 위트 있는 말과 글
신문기자로 20년간 글을 닦아 온 이 전 대표는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언어를 자신의 장기로 삼았다. 초선 시절 아무 인연 없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그의 취임사까지 쓸 수 있었던 것도 쉬우면서도 품격 있는 말과 글 덕이었다.
동아일보 기자 입장에서 보자면 같은 회사 출신의 선배지만, 정치권에 입문한 그를 보면 ‘어렵고 까칠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더 강했다. “기사 때문에 혼났다”거나 “따로 후배들을 챙기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16년 5월 전남 강진에서였다. 당시 강진 만덕산에서 칩거 중이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인터뷰를 위해 다른 선배와 함께 내려갔는데, 손 전 대표가 전남지사였던 그를 식사 자리에 불렀다. 이 전 대표는 당시까지 손학규계에 속했다. 막걸리를 마시던 그의 말이다.
“국민의당(2016년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얻은 안철수 의원 주도 정당) 초선 중에 손금주 의원이랑 이용주 의원이 있어. 내가 최근에 이분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당 방침이 뭐냐, ‘금주’(손금주 의원)냐 ‘용주’(이용주 의원)냐 했더니 황주홍 의원이 ‘주홍’. 술을 넓게 마시자는 것이라고 답해. 내가 이제 전남도 삼당(금주 용주 주홍) 체제가 됐다, 첫 번째 안주는 ‘삼합’이라고 했다.” - 취재 메모 중
다시 취재 메모를 봐도 인상적인 ‘위트’였다. ‘아재개그’의 성격도 있다. 동아일보 김순덕 대기자에게는 “자네는 이름도 순하고 생긴 것도 덕스러운데 왜 글은 독하게 쓰느냐”고 했다고 한다. 김 대기자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그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로 임명된 뒤 인기를 누렸다. 이 전 대표는 2017년 9월 대정부질문에서 능숙한 답변과 ‘촌철살인’ 화법으로 관심을 끌었다. 당시 야당 의원이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오죽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통화를 하면서 한국이 대북 대화 구걸하는 거지 같다는 그런 기사가 나왔겠냐”고 하자 이 전 대표는 “의원님이 한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상대방과 각을 세우지 않으면서도 위트가 있었다.
● “김대중은 존경받는 지도자, 노무현은 사랑받는 지도자”
2019년 12월 말 당시 총리였던 이 전 대표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말이었다. 기사화를 위해 다듬기 전 ‘날것’의 워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존경받는 지도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랑받는 지도자였다. 노 전 대통령은 때로는 보통 사람과 다른 대응을, 때로는 거칠게 보였다. 그런 것마저도 대중적 사랑의 원천이 됐다. 한 번은 그때 충청권에 수도를 이전한다는 게 공약이었는데 나중에 그것이 관습법 위반이라고 해서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일고 수도권에서 들썩들썩했다. 그 무렵 수도권을 안심시키려고 부천역에서 유세했는데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제가 충청권에 옮기려는 기관은 시끄럽고 돈 안 되고 더러운 기관입니다’라고 했다. 당시 대변인이었던 나는 ‘야 이거 큰일 났다’고 생각하며 화가 나서 ‘말 좀 조심하시라’고 하려고 전화했어. ‘여보세요’. 첫마디가 ‘제가 사고쳤지예~’. 항의하려다가 힘이 빠져서..‘약속 있어요? 소주 한잔 합시다’ 했어. 어휴 미워할 수도 없고. 그런 게 있다.”
인터뷰 말미엔 “많은 국민으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도 ‘좋은 총리였다’고 기억된다면 영광이겠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이낙연 총리 “신발 신고 발바닥 긁는 것 같은 정책은 곤란… 현장이 시작이자 끝”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1223/98923851/1
● 수비엔 능했지만 공격엔…
문 전 대통령의 강한 신뢰를 받는 총리였던 이 전 대표는 후광 효과를 누렸다. 기자 20년, 정치 20년 등의 경력과 총리를 지내며 ‘수비’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친문(친문재인) 지지층은 차기 대선 주자로서 중도 성향의 이 전 대표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는 40%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며 수개월 동안 대선 주자 1위를 달렸다.
최장수 총리를 마친 뒤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 2020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고, 본인도 서울 종로에서 당선되며 ‘상한가’를 쳤다. 당 조직을 장악하려던 그는 그해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당의 전면에 나선 게 오히려 독배가 됐다. ‘꼰대’ 이미지와 “남자는 아이를 안 낳아서 철이 없다” 등 말실수가 이어지면서 점수를 깎아먹었다. 수비엔 능했지만 신중한 태도는 공격수로선 적합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능숙한 화법은 오히려 ‘미꾸라지’ ‘능구렁이’ 같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독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과거 누리꾼들이 풍자해 화제가 됐던 이 전 대표 화법이다.
2021년 신년 특사에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특별사면을 주장했다가 친문 지지층의 외면을 받으며 지지율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사이다’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타고난 공격수인 이재명 대표에게 후보직을 내줘야 했다.
사면 논란 당시 이 전 대표도 “정말 뼈저린 후회를 했다”고 한다. 본인이 총대를 멘 것 자체가 오만함이었다는 후회였다. 논란 이전엔 이 전 대표를 신선하다고 보는 국민들이 있었지만, 정치공학적인 시도로 비춰지면서 대중들이 실망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등 이재명 대표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을 펼친 것이 오히려 대중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다는 반응도 있다. 열린우리당과 분당됐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에 남았다는 것도 다시 회자됐다.
이 전 대표는 대선이 끝난 뒤 지난해 6월 출국해 현재 미국 워싱턴에 있는 조지워싱턴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이 복귀를 독촉하고 있지만 차기 대권 가도가 녹록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는 본인이 존경받는 지도자와 사랑받는 지도자라고 표현했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2019년 하반기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1년간 총리와 민주당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이었던 그의 ‘마크맨’이었습니다. 특별히 후배라고 챙겨주지 않았고, 특히 다른 기자들 앞에선 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동아일보만 챙기고 다른 언론사 기자들을 차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대신 한 번은 대정부질문이 있던 날 저녁 자리를 마치고 가다가 바깥에서 보이는 1층 김치찌개집에 총리 경호원이 있는 걸 보았습니다. 대정부질문을 마치고 몇몇 장관들과 함께 요기를 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저와 친분이 있는 장관 등도 같이 있길래 후배 기자와 함께 ‘쳐들어’ 갔습니다. 가서 인사를 했더니 “앉아서 막걸리 한잔 먹고 가라”고 합석을 권유했습니다.
총리 시절 몇 차례 만났습니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 당에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국회에서 따로 인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다가 “총리님” 하고 인사했더니 돌아온 말은 “자네, 왔는가”였습니다. 두 단어였지만 왠지 모를,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따뜻한 속정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츤데레’라는 별명이 그에게 잘 맞다고 봅니다. 후배들에게 엄하고 따끔한 질책을 하더라도 그들의 발전을 위해 옳은 소리를 한 것일 뿐이고 ‘뒤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차례 대선 경선에서 낙마한 그는 이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9일 <법정모독 6화>에서는 이 전 대표의 대선 주자로서의 전망에 대해 풀어보겠습니다.
황형준기자 constant25@donga.com
'11. 유명 정치인(교수, 기자) 칼럼과 도서 > 11-7. 황현준 동아일보 기자의 법정모독' 카테고리의 다른 글
4화 마이웨이’ 걷는 尹…그가 말했던 검찰이 망하는 지름길은? (2) | 2025.01.08 |
---|---|
3화 저 선배랑 놀면 시험 못 붙는다, 윤석열 (0) | 2024.03.19 |
2화 절대 정치안할 사람, 한동훈 그런데 요즘” (0) | 2024.03.19 |
1화 조선 제일검, 한동훈 (0) | 2024.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