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정치(政治)를 정리(整理)해 드립니다
20. MY 시사 특강/20-3. 유튜브 시사 특강

친일파와 독재자를 지켜주며 2인자를 노리는 윤상현의 정치 (3)

by organizer53 2025. 3. 3.

Chapter 3: 전두환의 사위, 윤상현

1. 전두환의 사위가 된 과정

윤상현 의원을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수식어 중 하나는 **‘전두환의 사위’**이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딸인 전효선 씨와 결혼했으며, 이 결혼을 통해 군사정권과의 인연을 맺었다.

윤 의원이 자신의 책에서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의 인연은 대학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윤상현은 서울대학교 재학 중 **프랑스어 학원(알리앙스 프랑세즈)**에 다니던 중 전효선을 만났다. 당시 전효선은 경호원과 함께 학원에 다녔으며, 수강생들 사이에서도 대통령 딸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윤상현은 책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교정에서 혼자 수업을 듣고, 혼자 밥을 먹는 그녀가 눈에 띄었다. 연민의 마음이 차츰 순정이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교류를 지속했고, 전효선은 1981년 서울대를 한 학기 다닌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갔고, 1984년 약혼을 했다. 윤 의원이 대학을 졸업한 후인 1985년 6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식은 청와대 관저에서 진행되었으며,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청와대에서 열린 최초의 결혼식이었다. 이는 전두환 대통령의 권력과 당시 윤상현의 위치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 학생운동을 외면한 대학 시절

1980년대 초반은 **‘서울의 봄’**이 좌절되고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던 시기였다. 대학가에서는 연일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으며, 많은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윤상현 의원은 책에서 **“천성이 온순하여 부모님 뜻을 거스를 마음이 없었다”**고 밝히며, 학생운동을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념을 논하는 친구들의 말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평가하며, 정치적 문제에 거리를 두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당시 군사독재 정권의 최고 권력자인 전두환의 딸과 교제하고 있었던 그의 입장과도 연관이 깊다. 학생들이 독재 정권에 저항할 때, 그는 권력층의 일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3. 병역 특혜와 석사 장교 제도

윤상현 의원은 1981년 대학에 입학해 1985년 졸업했다. 특이한 점은 휴학 없이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군대 문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특수 전문 요원(석사 장교) 제도라는 병역 특례가 있었다. 이는 석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 중 일부를 선발해 6개월의 군사훈련과 2개월의 전방 체험만 하면 병역 의무를 끝낼 수 있도록 한 제도였다.

이 제도는 전두환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이 입대할 즈음에 신설되었으며, 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아들 노재원도 같은 방식으로 군 복무를 대체했다. 결국 1992년, 이 제도는 폐지되었고, **‘전두환·노태우 아들 특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윤상현 의원 역시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다. 그는 결혼 후 미국 유학을 떠났고, 석사 학위를 받은 뒤 6개월 훈련을 받는 것으로 병역을 마쳤다.

4. 전두환 심판의 순간과 윤상현의 역할

1988년 총선 이후, 국회는 전두환 정권의 부정과 비리를 조사하는 청문회를 열었다. 이는 군사독재의 정점에 있던 전두환이 역사적 심판대에 처음 오르는 순간이었다.

당시 윤상현은 사위로서 전두환의 가족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밝힌다. 그의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술 잘 마시고 매너 좋은 윤서방,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충성심을 유지시키는 것, 하루치의 인정을 베풀며 단도리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가족을 돌보는 역할을 넘어, 그는 군사정권의 핵심부에서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기도 했다.

1988년 당시, 경향신문 기자였던 원유복의 기사에 따르면,

 

“전두환 경호실장을 지낸 현준희의 증언에 따르면, 노태우가 전두환을 정치적으로 압박하자, 사위 윤상현이 흥분하여 ‘ 기관총’을 들고 싸우자고 설치다가 만류당했다.”

 

이 기관총은 청와대 경호실에서 사용하는 이스라엘제 기관단총으로, 사위 윤상현이 직접 무장을 시도하며 반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정치는 지금과는 달랐다. 김대중이 거주하던 동교동, 김영삼의 상도동, 그리고 전두환의 연희동은 대한민국 정치의 핵심 거점이었다. 윤상현은 연희동에서 정치인들을 모시고, 군사정권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이는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이는 계기였다.

5. 전두환의 몰락과 윤상현의 행보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은 연희동을 떠나 강원도 백담사로 들어갔다. 약 2년간 머물던 그는 1990년 12월에서야 연희동으로 돌아왔다.

한편, 윤상현 의원은 1991년 9월,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7년, 서울대학교 초빙 교수로 귀국했으며, 2년 후 정치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된다.

결론: 군사정권의 후광 속에서 성장한 윤상현

윤상현 의원의 정치 경력은 단순한 개인의 노력이나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는 전두환 정권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성장했고,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1. 전두환 대통령의 딸과 결혼하면서 권력층의 일원이 되었다.
  2. 학생운동을 외면하며 군사정권의 편에 섰다.
  3. 석사 장교 병역 특례를 통해 특혜를 입었다.
  4. 전두환 청문회 당시 가족을 보호하고,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5. 연희동에서 정치적 경험을 쌓으며, 보스 정치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하며 보수 정권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그는 보수 정치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군사정권의 잔재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상현 의원의 정치적 행보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현재의 발언과 정책만이 아니라, 그가 어떤 배경 속에서 성장하고, 어떤 세력과 연계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은 개인적 신념이 아니라, 군사정권의 후광 속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결과물이다.

 

 

출 처 :  ChatGPT 4.0,  유튜브 곰곰이  https://youtu.be/9iAwUORoRio?si=SSJGaFlpeb8jM21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