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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政治)를 정리(整理)해 드립니다
20. MY 시사 특강/20-3. 유튜브 시사 특강

친일파와 독재자를 지켜주며 2인자를 노리는 윤상현의 정치 (4)

by organizer53 2025. 3. 4.

Chapter 4: 첫 번째 보스의 등장 – 박근혜와의 관계

1. 정치 입문의 시작과 연이은 공천 실패

윤상현 의원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연고가 있던 동작을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이후 2002년 8월 재보궐선거에서 하남시 지역구에 도전했지만 또다시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그는 정치 인생에서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진짜 모실 보스’인 박근혜였다.

2000년과 2002년 이회창 체제에서 공천에 연이어 탈락했던 그는, 2004년 총선에서 박근혜의 도움을 받아 공천을 받는다. 지역구는 현재의 **인천 미추홀구(당시 인천 남구을)**였다.

2. 2004년 총선과 박근혜의 정치적 부상

2004년 총선은 차떼기 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참패한 선거였다. 한나라당은 선거를 앞두고 극심한 위기를 맞이했으며, 예상되는 패배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박근혜를 당 대표로 선출했다.

박근혜는 당사를 옮겨 **‘천막 당사’**를 운영하며 위기의 한나라당을 구했고, 이 선거에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윤상현은 이 선거에서 낙선했다. 당시 정치적 신인이었던 그에게까지 박근혜의 힘이 미치지는 못했던 것이다.

3. 박근혜 곁으로 – 정치적 성장과 이혼

2005년, 윤상현은 **“희망으로 가는 푸른 새벽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의 추천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박근혜가 그를 인정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같은 해 2005년 9월, 윤상현은 전효선 씨와 이혼한다. 이는 그가 전두환의 사위라는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새로운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는 행보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후 박근혜는 2006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다시 한 번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리고 2007년 대선 경선에 출마했다. 윤상현은 이때 박근혜 대선캠프 조직 단장을 맡으며 더욱 가까운 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4. 국회의원 당선과 박근혜의 최측근으로 부상

윤상현은 2008년 총선에서 인천 남구을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면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2012년 총선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 재선에 성공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경선 공보단장을 맡았고, 대선 본선에서는 박근혜 후보 수행단장을 맡아 사실상 그녀의 최측근 정치인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윤상현은 다음과 같은 요직을 맡으며 실세 정치인으로 자리 잡았다.

  •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별명: ‘실세 수석’)
  • 새누리당 사무총장
  • 대통령 비서실 정무특보 (2015년 2월~10월)

정무특보는 대통령과 국회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자리로, 사실상 **“국회에 있는 대통령의 아바타”**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5. 유승민 제거 작전 – 박근혜의 뜻을 수행한 충성파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의 개혁 성향 정치인들과 갈등을 빚던 시기, 윤상현은 박근혜의 입장을 적극 대변했다.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충돌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당내 갈등이 심화되었다.

박근혜는 유승민이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는 유승민이 직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때 윤상현은 강하게 유승민 사퇴론을 제기하며 박근혜의 뜻을 밀어붙였다. 결국 유승민은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고, 윤상현은 박근혜의 ‘정무특보’로서 충성을 다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6. 김무성과의 충돌 – “다 죽여” 녹취록 파문

한편,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은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있었으며,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김무성은 2012년 총선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주도하는 공천에서 배제된 바 있었다. 그러나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부산 영도구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2014년에는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경계했고, 윤상현은 박근혜의 충성파로서 김무성 ‘불가론’을 제기하며 압박을 가했다.

그러던 중,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살생부 파문이 터졌다. 김무성 대표에게 친박 인사들이 ‘물갈이 명단’을 전달했다는 제보가 나왔고,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윤상현이 김무성을 향해 욕설을 하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다 죽여! 그래서 전화했어. 내가 당해. 가장 먼저 그런 X부터 공천에서 떨어뜨려.”

 

이 사건으로 당내 갈등이 극에 달했고, 윤상현은 결국 2016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7. 탈당 후 무소속 당선, 그리고 복귀

공천을 받지 못한 윤상현은 불복하고 탈당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이후 다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이후, 그는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약화되었다.

8. 박근혜 탄핵과 몰락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윤상현은 정치적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한때 박근혜 정부의 실세 중의 실세였던 그는, 탄핵 이후 권력에서 멀어졌다.

결론: ‘보스 정치’의 전형적인 사례

윤상현 의원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박근혜였다.

  1. 2004년 총선부터 박근혜와 인연을 맺고 정치적 후원을 받았다.
  2. 2008년 국회의원 당선 이후, 박근혜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3.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수행단장을 맡으며 핵심 인사가 되었다.
  4. 박근혜 정부에서 정무특보를 맡으며 실세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5. 유승민 제거 작전을 수행하고, 김무성과의 공천 갈등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6. 박근혜 탄핵 이후 정치적 입지가 약화되었다.

윤상현은 전형적인 ‘보스 정치’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의 정치적 생명은 보스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 속에서 움직여 왔다.

 

 

출 처 :  ChatGPT 4.0,  유튜브 곰곰이  https://youtu.be/9iAwUORoRio?si=SSJGaFlpeb8jM21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