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상 최악의 친일·매국 인물 6인 심층 분석
1. 우범선(禹範善) - 을미사변 가담, 일본으로 도망간 조선군 장교
① 주요 친일 행적
- 조선 말기 훈련대 대장(군 지휘관) 으로 활동.
-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직접 가담.
- 일본 자객들이 명성황후를 알아보지 못하자 "저 사람이 명성황후다" 라며 직접 신원을 확인해 줌.
- 일본군이 명성황후를 잔혹하게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하는 것을 방조.
- 조선의 고위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결탁하여 자국의 왕비를 죽이는 데 협력.
- 사건 이후 처벌을 두려워해 일본으로 도망.
- 일본에 숨어 지내다 1903년 조선 의사 고영근에게 암살당함.
② 역사적 평가 및 후손
- 조선 군인으로서 자국 왕비 살해에 가담한 역사상 최악의 매국노 중 한 명.
- 그의 아들 우장춘 박사는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부끄러워하며, 한국 농업 발전을 위해 봉사.
- 일본에서 최고의 농학자로 성장했으나, 아버지의 죄를 씻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
- "나는 조국에 헌신하겠다"는 신념으로 농업 연구에 평생을 바침.
- 우장춘 박사의 삶은 '친일파 후손이라도 역사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
2. 이완용(李完用) - 한일병합 조약을 주도한 대표적 매국노
① 주요 친일 행적
- 1905년 을사늑약(외교권 박탈 조약) 체결을 주도.
- 당시 학부대신으로 있으면서 을사오적(乙巳五賊) 중 한 명으로 역사에 남음.
- 1907년 정미조약(대한제국 군대 해산) 협조.
-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는 데 앞장서며, 일본의 식민지화 작업을 도움.
- 1910년 한일병합 조약을 체결, 대한제국 멸망의 결정적 역할을 함.
- 일본과 협력하여 조선의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듦.
- 이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거대한 재산과 작위를 받고, 귀족 생활을 누림.
-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운동을 조롱.
- "시위란 힘없는 자들이나 하는 것이다."라며 민족적 저항을 비웃음.
- 죽을 때까지 친일 활동을 멈추지 않고, 조선의 식민지화를 찬양.
② 역사적 평가
- "트리플 크라운(을사늑약 + 정미조약 + 한일병합 조약) 매국노" 라는 불명예를 가짐.
-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에게 암살당할 뻔하여 중상을 입고, 이후 평생 건강 악화.
- 죽을 때까지도 대한민국을 일본의 일부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가짐.
- 그의 후손들은 이완용의 친일 재산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걸기도 하여 논란 지속.
3. 윤덕영(尹德榮) - 조선 왕실을 배신하고 국새를 일본에 넘긴 매국노
① 주요 친일 행적
- 1910년 한일병합 조약 체결 당시, 조선 왕실의 국새(국가 공식 도장)를 빼앗아 일본에 넘김.
- 당시 순종 황제의 황후(순정효황후)가 국새를 숨겼으나, 강제로 탈취.
- 조선 왕실의 자존심을 짓밟고, 한일병합을 공식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함.
- 조선이 일본에 완전히 병합된 후, 일본으로부터 거대한 토지와 재산을 받음.
- 서울 성북구에 궁궐급 대저택(벽수산장)을 건설하여, 일본 고위 관리들과 교류.
- 서울 시내 30만 평 이상의 부동산을 소유할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누림.
② 역사적 평가
- 조선 왕실을 배신한 대표적인 친일파로 악명 높음.
- 그의 후손들은 윤덕영의 재산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에서 패소.
- 오늘날까지도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문제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됨.
4. 이광수(李光洙) - 독립운동에서 친일로 변절한 대표적 친일 문인
① 주요 친일 행적
- 초기에는 독립운동가였으나, 변절 후 대표적 친일 문인이 됨.
- 1922년 "민족개조론" 발표.
- "조선인은 열등하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야 한다."라는 논리를 펼침.
- 1930년대 이후, "일본 천황을 위해 조선인들이 희생해야 한다." 라고 주장.
- 학도병 징집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조선 청년들이 일본군으로 징집되는 것을 독려.
- 1945년 해방 후에도 친일 행적을 반성하지 않음.
-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북한군에게 체포되어 강제 북송, 이후 감옥에서 병사.
② 역사적 평가
- "독립운동가에서 친일 매국노로 변절한 대표적 사례".
- 친일 문인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인물.
- 해방 후에도 반성을 하지 않아, 현재까지도 문학계에서 논란이 계속됨.
5. 노덕술(盧德述) - 독립운동가를 잔혹하게 고문한 친일 경찰
① 주요 친일 행적
-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경찰 간부로 활동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잔혹하게 고문.
-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의 혀를 뽑는 고문을 자행.
- 해방 후에도 처벌받지 않고, 대한민국 경찰 간부(서울시 수사과장)로 활동.
-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체포하여 고문하며, "너는 공산주의자다"라고 매도.
- 반민특위(친일파 처벌 기구)에 체포되었으나, 이승만 정권이 경찰을 동원해 구출.
② 역사적 평가
-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해방 후에도 반공주의를 내세워 살아남은 대표적 친일 경찰.
6. 김활란(金活蘭) - 위안부 동원 찬성, 여성 친일 인사
① 주요 친일 행적
- 이화여대 초대 총장으로 활동하며, 위안부 동원을 찬성하는 연설을 전국적으로 진행.
- 일본군을 위해 조선 여성들이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
- 해방 후에도 자신의 친일 행적을 정당화.
② 역사적 평가
- 친일 여성 인사 중에서도 최악의 인물.
- 이화여대 학생들 사이에서 그녀의 동상을 철거하라는 요구가 지속됨.
결론
- 이들의 친일 행적을 반면교사 삼아, 역사적 경각심을 가져야 함.
- 친일 청산이 미완으로 남아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역사 교육이 필요함.
출 처 : ChatGPT 4.0
우리 역사상 최악의 친일 매국노 황현필 한국사 2023. 9. 30.
https://youtu.be/YjFZ6xPebvc?si=VVOo0WvpAE3rs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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