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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政治)를 정리(整理)해 드립니다
20. MY 시사 특강/20-4. 대한민국 현대사 특강

20-4-1. 대한민국 건국 과정 및 분단의 역사, 황현필의 국회 강의 (2024. 1. 30.)

by organizer53 2025. 3. 3.

1. 대한민국 수립 과정

📌 해방과 초기 정세 (1945년 8월 15일)

  • 대한민국이 해방된 날(8월 15일)을 두고 "독립"이 아닌 **"해방"**이라는 표현을 선호함.
    → 이유: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는 진정한 독립이 아니기 때문.
  • 해방 직후, 사람들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이는 대한제국(1897년~1910년)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의미로 사용됨.
  • 그러나 해방을 미리 알고 준비한 인물이 있었음 → 여운형
    → 일본 총독부의 정무총감(엔도)가 여운형을 찾아와 정권 이양을 논의하면서 조선의 독립이 예상되었음.
    → 일본인들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정권 이양 협상을 진행.

📌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와 조선인민공화국(인공)

  • 여운형, 해방되자마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조직하여 전국적인 행정과 치안을 담당.
  • 곧 **조선인민공화국(인공)**으로 발전하며, 이승만을 주석으로 임명했으나 이승만이 거부.
  • 그러나 **미군정(1945.9.9.~1948.8.15.)**이 시작되면서 조선인민공화국은 공식 인정받지 못함.

📌 미군정과 소련군정의 차이

  • 미군정(남한, 9월 9일 시작)
    • 미군정이 발표한 맥아더 포고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점령 상태이며 모든 권한은 미국에 있다"는 내용이 포함됨.
    •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미군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라고 인식함.
  • 소련군정(북한, 8월 24일 시작)
    • 소련군이 발표한 치스차코프 포고문은 **“우리는 해방군”**이라고 명시함.
    • 북한에서는 공산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인민위원회"**가 조직됨.

🔎 결론:
→ 미군은 점령군처럼 행동했지만, 소련군은 북한에서 친소 정권을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음.
→ 남북한의 통치 방식이 이 시점부터 차이를 보이기 시작.


2. 미소 갈등과 신탁통치 논란

📌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1945.12)

  • 미국, 영국, 소련이 한반도를 최대 5년간 신탁통치 후 독립시키자는 안을 논의.
  • 동아일보가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오보를 내면서 큰 논란이 발생.
    → 실제로는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소련은 즉각 독립을 원했음.
    → 하지만 이 오보로 인해 한국에서는 소련=나쁜 나라, 신탁통치=반대해야 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됨.

📌 찬탁(사회주의 진영) vs 반탁(우익 진영) 대립

  • 사회주의 계열(여운형, 박헌영 등):
    → 신탁통치라도 받아들이고, 통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
  • 우익 계열(이승만, 김구 등):
    → 신탁통치는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즉각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
  •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김구는 신탁통치 반대가 오판이었음을 깨닫고 입장을 바꿈.

📌 미소공동위원회(1946~1947)

  • 남북한 총선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논의했으나 결렬됨.
  • 이유:
    → 소련은 반탁 세력과는 협상할 수 없다고 주장.
    → 미국은 모든 정치세력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
    → 결국 협상이 실패하면서 남북한의 정치적 대립이 심화됨.

3.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 분단

📌 이승만의 정읍 발언(1946.6.3)

  • 처음으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발언.
  •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었으니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자.”
  • 김구는 이에 반발하며 이승만과 결별하고, 남북협상을 추진.

📌 UN과 남한 단독선거(1948.5.10)

  • UN이 "남북한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으나,
    소련과 북한이 이를 거부남한에서만 단독선거가 진행됨.
  • 사회주의 세력과 김구, 김규식 등은 선거 불참.
  • 선거 결과: 이승만과 한민당 세력이 주도.

📌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8.15)

  •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출범.
  •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이라고 보는 이유:
    →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했기 때문.

📌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1948.9.9)

  • 김일성도 "남한이 먼저 단독정부를 수립했다"는 명분을 만들어
    9월 9일 북한 정권을 수립.
  • 이로써 한반도 분단이 공식화됨.

4. 통일 문제와 역사적 평가

📌 분단의 책임

  • 미국과 소련: 한반도를 전략적 이해관계로 나누면서 분단을 초래함.
  • 이승만: 단독정부를 추진하며 분단을 가속화함.
  • 김일성: 북한 정권을 수립하며 분단을 확정함.

📌 김구의 마지막 호소

  • 김구는 단독정부를 막기 위해 남북협상을 추진했으나 실패.
  • “나는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 협력하지 않겠다.”
    → 결국,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분단이 확정됨.

5. 결론 및 황현필 강사의 시각

  •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면서도, 분단의 책임이 단순히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강조.
  • 만약 남북이 통합된 정부를 구성했다면 전쟁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
  • 그러나 결국 대한민국 중심의 통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음.

📌 요약 정리

  1. 해방 직후(1945): 여운형이 건준과 인공을 세웠지만 미군정이 이를 인정하지 않음.
  2. 신탁통치 논란(1945~1946):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장했으나, 한국에서는 거꾸로 알려짐.
  3. 남한 단독정부 수립(1948):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추진하면서 분단 가속화.
  4. 북한 정권 수립(1948.9.9.): 김일성이 북한 정부를 수립하며 분단이 확정됨.
  5.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 그러나 분단의 책임과 그 과정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평가가 필요함.

📢 이 강의의 핵심 메시지

  •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역사는 단순히 흑백논리로 볼 수 없다.
  • 분단의 책임을 제대로 평가하고, 미래의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  ChatGPT 4.0
            대한민국은 어떻게 수립되었나? - 여운형, 김구, 이승만 그리고 김일성까지...황현필 한국사 2024.1.30

             https://youtu.be/rjvu0LTKrk4?si=51c1XAq5cBC2WH-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