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의 역사적 의미
며칠 후면 총선이다. 그런데도 좀처럼 선거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근래에 이렇게 조용한 선거가 있었던가 싶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불안과 자제의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정치적 쟁점도, 유세의 열기도 없는 참으로 이상한 선거다.
사실 4·15 총선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선거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세기를 보내고, 이제 새로운 100년을 여는 첫 선거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지난 100년의 정치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다짐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자못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 4·15 총선은 대한민국의 신세기를 여는 선거인 만큼 지난 100년의 청산되지 않은 역사를 청산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식민 시대, 냉전 시대, 독재 시대에 권력에 기생하여 이 나라를 지배해 온 정당과 정파는 이제 정치의 무대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반성 한 번 없이 너무도 오래 살아남았다. 지금도 친일과 독재의 후예들이 여전히 활개 치며 도처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다. 이제 국민이 나서서 표로 이들을 영구 퇴장시킬 때가 되었다. 유권자들은 어떤 정당, 어떤 인물이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악취를 풍기고 있는지 예민하게 감지하고, 엄정하게 단죄해야 한다.
둘째,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정당에 길을 열어주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국가의 모습은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룬 바탕 위에서 인간 존엄을 구현하는 성숙한 민주공화국이다. 구성원 모두가 존엄한 존재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복지국가, 미래 생명과 환경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진 생태 국가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이번 총선은 이러한 사회적·생태적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셋째, 4·15 총선은 지난 70년 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 온 잘못된 정치 지형을 교정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 지형을 가진 나라이다. 보수와 진보가 경쟁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수구와 보수가 과두 지배하는 형세인 것이다. 보수양당제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공립대 무상교육, 무상 보육, 대학생 부채 탕감, 부유세 도입(워런, 샌더스) 등의 선거공약이 나오는 판에 지금 한국 선거에서는 이 정도 공약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 지형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광장을 촛불로 물들이고, 정권을 교체해도 우리의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총선에서 정치 지형을 한 발짝이라도 왼쪽으로 옮겨놓지 않으면 이 땅의 ‘야수 자본주의’는 더욱 사나워질 것이다.
넷째, 이번 총선은 50년 지속된 지역주의를 끊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영호남 지역감정은 1970년대 초 박정희에 의해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지역주의는 위대한 한국 민주주의에 새겨진 쓰라린 상처다.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를 왜곡해 온 주범인 지역주의를 치유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왜곡된 정치 지형 속에서 위성정당이 창궐하고 기만적 정치 언어가 난무하는 절망적인 선거지만 그래도 꼭 투표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명한 유권자라면 세 개의 ‘전선’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첫째, 냉전 세력과 평화 세력의 전선이다. 이번 총선은 시대착오적인 반공 수구 세력이 정치 무대에 오르는 마지막 선거가 되어야 한다. 둘째, 이번 선거는 기득권 정치 계급과 개혁 정치 세력의 싸움이다. 승자독식 선거법에 기대어 한국 사회를 독점적으로 지배해 온 수구-보수 과두 지배체제를 허물어야 한다. 셋째, 이번 총선은 또한 자본과 노동의 다툼이다. 자본의 독재에 맞서 인간의 생존권과 존엄성을 지키려는 세력이 힘을 얻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는 한국인의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사재기도 패닉도 없는 의연한 시민들의 모습에 세계가 경탄하고 있다. 시민들의 품격 있는 행동은 정치인들의 저열한 행태와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이러한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시민이 비루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언제부턴가 독일의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의 시구가 자꾸 귓가에 맴돈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그래, 환멸 속에서도 한 걸음 나가야 한다.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2020. 4. 13)
'11. 유명 정치인 칼럼과 도서 > 11-1. 김누리 중앙대 교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쟁, 야만의 다른 이름 (1) | 2023.12.12 |
---|---|
가면 쓴 민주주의 (1) | 2023.12.12 |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반드시 돌아온다 (0) | 2023.09.27 |
학벌계급사회를 넘어서 (0) | 2023.09.20 |
위험수위 넘어선 한국 정치의 우편향 (1) | 2023.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