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 민주주의의 등장과 발전
가. 시민혁명을 통한 민주주의의 등장
영국의 명예혁명(1688) 미국 독립 혁명(1775) 프랑스혁명(1789) 등 시민혁명(市民革命)을 통해 등장했던 근대 민주주의의 특징은
첫째는 모든 인간은 자유, 생명, 재산 등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천부인권을 가졌다는 사실이 선언
둘째는 시민들에 의해 군주나 귀족들의 권력이 제한되고, 공화정으로 전복되기 시작했고, 민주주의 제도들이 등장
근대 민주주의의 등장에도 불구
- 자본주의사회의 새로운 지배계급인 부르주아들의 지배권이 강화되고,
- 대중들의 부상에 따라 기본권, 특히 보통선거권이 일반 대중들에게 확산되었습니다.
나. 세계의 민주주의 발전 (20세기 전반기)
20세기에 들어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 체계는 위기와 도전에 처함
-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대공황 (1929-1933),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1917), 1930년대 이탈리아와 독일 파시즘의 도전, 2차 세계대전(1939-1945)
이 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에 대한 연합국의 승리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의해 극복되었고,
이는 선진국에서 복지국가의 형태로 나타났던 케인즈 주의로 국가의 경제개입과 복지정책을 통해 자유와 더불어 평등이 강화된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이 같은 민주주의 발전이 주로 선진국에만 해당되었을 뿐,
- 20세기에 강대국들의 식민지배에서 비로소 독립했거나 근대화의 발전이 뒤늦었던 나라들은 민주주의 기반이 매우 취약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들 국가에서 주로 등장했던 체제는 혁명적 민족주의 또는 군부독재의 권위주의체제였다
다. 세계의 민주주의 발전 (20세기 후반기)
20세기 후반기의 민주주의는 또 다른 환경과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 1,2차 오일쇼크와 Stagflation으로 인한 복지에 대한 반발과 비판 그리고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이다.
다른 한편으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이 붕괴로 제3세계의 다수나라들에서 군부독재의 민주화가 야기되었다.
그 결과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 등 대안적 체제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민주주의는 사회 발전의 유일한 대안으로까지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도 내부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하게 된다
- 공정과 평등의 복지국가적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으로 인해 복지정책의 축소와 사회적 양극화로 나타나 현대 민주주의의 경제적 평등의 기반이 매우 약화되고 빈부의 격차 초래
- 현대의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 사이 균형감 상실로 인한 상호갈등심화
2.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도입과 발전
- 이승만 반공독재와 박정희 개발독재에 의해 상당 기간 동안 지체되었고
- 민주주의의 탈을 쓴 권위주의 독재지도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당, 의회와 같은 민주적인 제도들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용하여, 국내·외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하여, 권력 유지에 필수인 해외 원조와 투자를 유치하였다.
- 독재정권에 저항한 광주민주화 운동을 통해 한국민주주의 기반을 구축되었고, 민주주의는 적어도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첫째는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강력히 구축되었던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
둘째는 서구의 민주주의와 달리, 복지국가적 경험을 갖지 못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그 평등적 측면 이 매우 결핍되어 있다는 점.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다음의 다섯 가지 기준에 따라 세계 167개국의 민주주의를 평가한다.
- 선거 과정과 절차는 자유롭고 공정한가?
- 정부의 기능은 합리적인가?
-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자유로운가?
- 정치 문화는 발전하고 있는가?
- 시민은 온전한 자유과 권리를 인정받고 있는가?
그 평가 결과 아시아에서 일본 외에는 유일하게 충실한 민주주의를 이룩한 대한민국!
하지만, 대한민국은
- 두 번의 쿠데타
- 두 번의 종신 집권기도
- 세 번의 국회 강제 해산
- 아홉 번의 헌법 개정 등 파란만장했던 민주주의의 역사를 겪어야 했다.
1948년 5월 10일, 한반도 사상 최초의 보통선거, 같은 해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 공포, 그리고 8월 15일 정부 수립.
이렇게 대한민국은 해방 후 불과 3년만에 민주주의 제도를 전면 도입하여,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국으로서 출범했다. 하지만, 오랜 왕권 지배에 이어, 35년간의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거치면서 주권자로서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일거에 도입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군사 쿠데타로 헌정이 중단되기도 했고 상당 기간 동안 국민의 정치적 자유가 억압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굴곡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전진해 오늘에 이르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출범 이후 굴곡을 거치면서도 전진해 오늘날 충실한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 잡기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4 · 19 의거
- 첫 권력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였으나 국회가 대통령을 선출하는 내각제적 요소도 갖고 있었다.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선출되었다.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던 이승만은 자신의 재선을 위해, 1952년 7월 국회를 굴복시키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관철하였다.
- 6.25 전쟁 이후 반공주의가 극에 달한 가운데 남한의 정치는 보수우파의 정치로 단일화되었다. 이승만은 1954년,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애도록 또다시 헌법을 개정하여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성과는 뚜렷했다. 여당과 야당의 정당 정치가 발전하였으며, 선거가 민의를 반영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자유, 평등, 국민 주권의 민주주의 가치를 교육받은 세대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는 1960년 4.19 혁명의 추동력이 되었다.
-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집권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노골적인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 이에 대한 전국적인 항의 시위는 4월 19일에 절정에 달했다.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100여명의 사망자까지 났다. 국민의 저항, 미국의 압력, 군부의 방관 등 때문에 이승만은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나.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과 5 · 16 군사정변, 유신체제
- 이승만 하야 후 야당 민주당의 주도로 의원내각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의 민주당 정부가 출범했으나, 집권당은 사분오열했고 각계각층의 요구가 쏟아져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 이를 기회로, 박정희 등 일단의 군부는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군부는 사회혼란을 수습하는 동시에 경제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민간 정부로의 변신을 꾀했다. 권력 형태는 의원내각제에서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었다.
- 1963년 10월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근소한 표차로 윤보선을 누르고 승리했다. 이로써 민주주의 정당정치와 대의제도가 다시 복원되었다. 집권 초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박정희 정부는 한일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며 위기를 맞았으나, 군을 동원해 반대세력을 제압했다.
- 1965년경부터 경제개발이 본궤도에 오르자 박정희는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계속적인 집권을 원한 그는 3선 개헌을 단행했다. 그리고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의 도전을 물리치고 3선에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박정희는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의 안보위기 상황에서 자주국방과 경제건설을 완수하기 위해서 계속 집권할 생각이었다. 그는 1972년 10월, 군을 동원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헌정을 중단시켰다. 이어서 대통령 간접선거와 대통령으로의 권한 집중, 대통령 임기제한 철폐를 골자로 한 유신체제를 세웠다.
- 그는 강력한 권한으로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해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동시에 비판세력을 철권으로 다스려, 유신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행위를 긴급조치로 처벌하였으며, 심지어는 그에 관한 보도도 금지하였다. 하지만 1978년 12월의 총선에서 국민은 집권당보다 야당에 더 많은 표를 주었고, 그에 힘입어 1979년 야당의 당수 김영삼을 필두로 한 반유신 운동이 격화되었다. 그 대처 과정에서 권력 핵심부의 분열이 일어나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되면서 유신체제가 붕괴되었다.
다. 전두환 신군부의 무력통치
- 그 후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열망이 컸으나, 1979년 12월 군부 강경파가 또다시 쿠데타로 군권을 장악하면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안개정국이 펼쳐졌다. 이듬해 생존권을 주장하는 근로자의 시위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 시위 등 서울의 봄이 왔다.
- 그러나 신군부는 5월 17일 국회 해산, 전국대학 휴교령 등 또 다시 헌정을 중단시켰다. 이튿날인 5월 18일부터 전라남도 광주에서는 그 항의하는 학생, 시민의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학생 시민에 대한 계엄군의 무력 진압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이후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원류가 되었다.
- 그 후 신군부는 집권 작업을 가속화했다. 간접선거를 통해 전두환이 7년 단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언론·출판, 집회 및 시위의 자유와 노동3권이 심하게 제한되었다.
라. 민주화 운동과 6 · 29 선언
- 하지만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초는 갈수록 단단해졌다. 학교 교육의 확대와 경제성장의 결과 고학력의 중산층이 육성되었다. 자유와 평등, 인권 등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인식하고 대공장과 기업의 기능공, 기술자, 관리자로 성장한 이들은 자신의 정부 선택권을 빼앗은 체육관 선거를 용납할 수 없었다.
- 전두환 정부 출범 이후 학생운동은 오히려 더욱 확산되었다. 체제 안정화와 더불어 정부가 유화책을 쓰자, 야당 정치인과 학생, 지식인의 민주화 운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함께 결성한 야당이 제1야당으로 도약해서, 국민의 정부선택권을 회복하는 직선제 개헌 운동을 시작했다.
- 그러던 중 발생한 1986년 여대생 성고문 사건, 1987년 대학생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졌고, 마침내 6월 소위 넥타이 부대라 불리는 일반 직장인까지 참여한 직선제 개헌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다. 집권세력은 끓어오르는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해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화 요구를 수용했으니, 바로 6.29선언이었다. 곧, 여야 합의로 대통령 직선제 등을 규정한 민주헌법이 마련되어 국민 투표에서 통과되면서 대한민국은 타협에 따른 평화적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다.
마. 군부 정권의 교체, 민주정권 등장
- 직선 개헌 후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집권여당의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이는 집권 세력 내의 권력 승계였지만, 국민의 선택을 거쳤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의미 있는 성과였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영삼이 승리함으로써 30년 가까이 지속된 군부 출신 대통령 시대가 막을 내렸고,
- 1997년에는 김대중이 야당 후보로는 최초로 승리하여, 실질적인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10년 후인 2007년에 다시 여야 간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1987년 개헌 이후 5년마다 대통령 선거가 평화롭게 진행되고, 두 번이나 여야 간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것은 한국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공고화 단계에 들어섰음을 뜻한다.
- 1948년 민주헌정제도가 도입된 후 그 내실을 갖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민주헌정 제도와 형식이 있었기에, 선거에 입각한 대의제도를 유지해 왔기에 민주주의의 내용을 온전히 채울 수 있었다. 그 과정이 점진적, 타협적이었기에 사회적 혼란을 줄일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사회 갈등의 원활한 조정, 안정적 리더십 구축과 정치적 책임성 강화,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증진시켜, 한 단계 더 진화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3.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계점
첫째는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강력히 구축되었던 수구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
둘째는 서구의 민주주의와 달리, 복지국가적 경험을 갖지 못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공평과 공정의 측면이 매우 결핍되어 있다는 점이며
셋째는 민주주의 짧은 역사로 인해 성공적인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이루지 못해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이데올로기적인 국론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출 처 :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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