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잘못된 한국교육 100년
가. 인간을 스펙으로 따지는 한국사회
- 지금 잘 쓰는 용어인 스펙(spec)은 무기의 사양, 기계의 사양을 말하던 것으로 언제부터 우리가 인간을 사양으로 따지게 되었을까? 우리도 모르게 스며든 인간의 관점이 아닌 자본 중심의 용어가 되었다.
- 지금 한국사회는 자본독재사회로 자본에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에 무감각 해진 우리, 한국 교육에서 단 한 번도 인간을 기르는 교육을 해 본 적이 없었다
- 우리 건국 100년의 역사 중
- 30년은 일제강점기 식민의 역사 : 교육의 목표는 황국신민
- 40년 군사독재 시기 : 교육 목표는 반공전사와 산업전사
- 30년 민주 정부 : 교육 목표는 성숙한 민주 시민이 아닌 인적자원을 기르는 것
- 2001년 ~ 2008년 교육인적자원부 라 명칭 : 인간을 자원 취급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우리의 교육정책
나. 한국교육의 목표가 바뀌어야 한다
- 대한민국이 1919년 임시정부에서 시작됐다고 할 때 올해는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해다. 지난 100년간 우리 교육은 어떤 교육이었나. 내가 보기에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오히려 '반(反) 교육'에 가깝다.
- 우리 교육의 목적은 약 30년간 '황국 신민 양성', 그 후 40년간의 민간독재‧군사독재 하에선 '반공투사 내지 산업역군의 양성'이었다. 그리고 민주정부가 들어선 30년간 우리가 키우고자 한 것은 '인적 자원'이었다. 민주정부에서조차도 존엄한 인간,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우는 교육을 한 적이 없다. 한국 교육은 단 한 번도 '인간'을 키우는 교육을 해본 적이 없는 거다.
- 대단히 역설적인 상황이다. 우리처럼 교육에 관심 많은 국민도 없는데 실제 우리가 한 것은 반(反)교육이었다니 이런 역설이 어디 있나. 향후 새로운 100년은 새로운 교육을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교육의 방향은 분명하다. 지금까지가 반(反) 교육이었으니 이제부터는 진정한 교육을 해야 한다. 존엄한 인간,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한다. 87년 이후의 민주정부에서 조차 진정한 교육이 없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 모든 교육개혁 논의는 입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만 집중되어 왔다. 입시정책이 교육정책일 수는 없는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강한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를 존귀한 존재로 여기며 타인을 존중‧배려하고, 불의에 맞설 용기를 가진 이들을 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사회를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헬조선'으로 만들어온 듯하다. 근본적으로 교육을 바꿔야 한다. 이제 그럴 때가 됐다.
- 한국 교육이 만든 새로운 계급 “학벌” 그로 인해 피폐해진 우리의 삶
- 입시지옥과 스펙 경쟁에 끊임없이 내달리는 한국의 청소년 이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교육은 무엇인가?
2. 학벌, 새로운 계급의 탄생
- 68혁명 당시 프랑스에서는 한 때 고등학생들이 파리거리를 휩쓸며,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프랑스 학벌체제의 정점에 있었던 소르본 대학의 해체를 주장한 결과 소르본 대학은 없어지고, 파리 1 대학에서 10 대학으로 전면적인 대학 재편이 이루어졌다.
- 이는 고등학생들이 자신을 공부기계로, 학습노예로 길들이는 체제를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해방시킨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해방의 역사였고, 모든 해방은 자기 자신들이 이룬 해방이었다. 흑인차별해방은 흑인이 이룬 것이고, 여성차별해방은 여성이 거둔 것이고, 대학차별화에서의 해방은 학생이 해방시킨 것이다.
- 학생들이 우리 한국사회의 마지막 노예라고 생각되며, 유럽과는 달리 아직도 해방되지 않은 노예인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의 청소년들은 정치적 자각을 해야 하고, 자신들을 옥죄이고, 길들이는 학벌사회에 저항해야 한다
가. 한국 계급사회의 붕괴
-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계급사회가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 몰락했지만 지역사회에서는 여전히 문화권력으로 살아남아 지배자 행세를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계급이 해체되고, 양반이나 평민이 아닌 피난민으로 전락,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평등지향적 사회가 되었다.
- 김대중(목포상고), 노무현(부산상고), 이명박(동지상고) 출신으로 당시 그 지역의 수재들이 돈이 없어 대학은 못가고, 상고로 진학한국은 당시 가난한 집안의 자식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 즉 최하층이 최상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는 정치적 탄력성이 엄청난 나라로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에 당시 유례가 없는 “평등지향사회”였지만
- 이제 한국사회는 그 평등의 발판에 “학벌”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만들어지고, 살인적인 학벌경쟁과 학벌계급사회가 등장하여 살인적인 학벌경쟁은 헬조선을 만든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나. 학벌이 숙명이 되어버린 사회
- 어린 시절부터 숨 막히는 경쟁에 내몰리는 교육환경과 우리 아이들이 겪는 고통과 상처, 좌절과 분노
- 서울의 한 로스쿨이 출신 대학을 다섯 등급으로 나눠 점수를 차등 부여하는 ‘출신대학 등급제’를 운영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아무리 시험을 잘 보고 자격증을 잘 갖춰도 출신 대학의 등급이 낮으면 합격이 불가능한 구조란다. 가히 한국판 카스트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출신 대학이 하나의 ‘신분’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학교가 생존경쟁의 전쟁터, 신분상승의 투기장으로 변해버린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친구를 영원히 짓밟고 올라서야 할 대상으로 보는 아이들, 극단적인 경쟁에 지쳐 우울한 아이들 – 이런 아이들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이 아닌가.
- 학벌이 숙명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한 인간이 이룬 어떠한 성취도, 한 개인이 기울인 어떠한 노력도 학벌의 벽을 넘어서기 어려운 학벌계급사회가 우리네 현실이다.
다. 기회가 많이 제공되는 사회가 되어야
- 우리 사회가 대학입시 한번으로 개인의 인생이 결정되는 ‘원샷 사회’라면, 독일은 개인의 꿈을 실현할 기회가 폭넓게 열려 있는 ‘텐샷 사회’다.(빈프리트 베버)
- 개인에게 기회가 널리 열려 있으니, 부르메스터처럼 제2, 제3의 인생에 도전하는 독일인은 적지 않다. 이것은 독일이 경제기적을 이룬 한 요인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으니, 잘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차별사회’에서 ‘기회사회’로, ‘원샷 사회’에서 ‘텐샷 사회’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
- 좋은 사회란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공평하게 열려 있는 사회다. 특히 대학은 기회를 열어주는 문이 되어야지, 기회를 가로막는 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번의 시험 결과로 모든 가능성을 박탈하는 원샷 사회는 인간의 다양한 재능을 짓밟는 야만사회요, 개인의 무한한 잠재력을 죽이는 불임사회다.
- 학벌계급사회를 넘어서는 근본 처방은 엘리트 대학 체제를 혁파하여 대학의 좁은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처럼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한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대학은 특권의 고지가 아니라, 기회의 평지여야 한다.
3. 한국교육의 현주소
가.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 시험형식을 바꾸는데 급급했던 지난 한국의 교육개혁! 한국교육을 지배하는 것은 경쟁교육, 즉 우열을 나누는 교육, 교육의 내용보다 평가를 더 중시하는 잘못된 교육을 하고 있다.
-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시험이 없는 유럽은 오직 고등학교 졸업시험만 존재하며, 90% 이상이 합격한다. 그렇다면 교육개혁 이후 독일의 학문 수준은 더 떨어졌을까? 전 세계 3번째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 독일
나. 한국 대학입시의 폐해
- 한국의 대학입시는 반교육적이고 반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삶을 불모화하는 근원이다. 이제 대학입시를 폐지할 때가 되었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주는 고통과 폐해가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이다.
- 첫째, 대학입시는 한국 교육을 고사시켰다. 모든 교육의 초점이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기에 학교는 배움을 통해 타인과 교감하는 곳이 아니라, 살인적인 경쟁을 통해 우열을 겨루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교육의 목표가 높은 사유 능력과 사회적 교감능력을 지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면 한국 교육은 완전한 실패작이다.
- 둘째, 대학입시는 한국 사회를 학벌계급사회로 타락시켰다. 사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평등지향사회이다. 기성권력집단(establishment)이 일제식민지배와 6.25 전쟁을 통해 정치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송두리째 상실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학벌은 사라진 과거의 신분을 대체하는 새로운 계급의 징표가 되었다. 한때 사회적 불평등을 교정하는 계급 사다리 역할을 했던 대학입시가 학벌계급사회를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 셋째, 대학입시는 한국인의 일상을 ‘사막화’(프랑코 베라르디)했다. 대학 입학에 목숨을 거는 사회에서 가정은 입시전쟁의 야전사령부로 전락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희생한다는 명목으로 가정의 행복은 유보되고, 일상은 활기와 생동감이 사라진 건조한 사막으로 변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누려야 할 학생들은 청소년기를 혹독한 노예 상태에서 보낸다.
3. 교육의 계층 이동 사다리 역할 무너져
- 우리 사회 교육불평등을 엿볼 수 있는 현상은 넘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2020년 대학별 국가장학금 신청자 현황’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4년제 대학 재학생은 고소득층 비율이 39.5%, 저소득층이 30.1%로 나타났다. 그러나 서울 15개 대학으로 좁히면 고소득층 비율이 51.2%로 저소득층(23.9%)보다 2.1배 높았으며, 범위를 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한정하면 고소득층 비율이 56.6%로 저소득층(21.5%)보다 2.6배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대는 그 비율이 각각 62.6%와 18.5%로 3.4배 차이가 났다.
- “대학 입시가 개인의 노력보다는 부모의 경제적 소득 등 외부적인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들고 있습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었던 교육이 오히려 부모의 부를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촉매제, 수단이 되어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심화·고착시키고 있다.
- 소득에 따른 이런 격차는, 고등학교부터 나타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분석 결과, 영재학교-과학고-국제고-외고-자사고-일반고로 서열화되어 있는 고교 입학도 수도권, 특히 학원 밀집 시·구 쏠림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서울대 신입생의 출신 고교 유형별로는, 일반고가 49.9%, 자율고 19.5%, 외국어고 10.1%, 영재학교는 8.3%의 비율을 보였다. 그러나 고교 유형별 학생 수 대비 서울대 신입생 비율은 영재학교 38.5%, 과학고 7.5%, 외고·국제고 5.0%, 자율고 1.5%, 일반고는 0.3%인 것으로 나타났다.
- 그런데 전국 8개 영재학교 입학자의 출신 중학교를 분석한 결과, 서울과 경기 지역 출신이 전체(828명)의 68.5%(567명)를 차지했으며, 특히 수도권 상위 10개 시·구 입학생이 43.6%(361명)를 차지했다. 상위 10개 시·구는 서울 강남·양천·노원·서초·송파구, 경기의 성남·고양·용인·안양·수원시로, 대표적인 학원 밀집지역이다.
- 9개 전국 단위 자사고도 전체 입학생 2418명 중 53.9%인 1304명이 서울·경기·인천 출신이었으며, 특히 외고 입학생의 90.3%, 민사고 79.7%, 상산고 59.4%가 서울·경기 출신이었다. 그리고 2019년 신경민 의원과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이 실시한 희망고교 유형별 사교육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단위 자사고를 희망하는 학생의 69%가 월평균 100만 원 이상의 고액 사교육비를 지출했다.
4. 한국사회의 충격적인 특징
가. 한국인의 삶은 허무하다 (프랑코 베라르디)
-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짚는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이다. 죽음의 스펙터클 여기서 주목할 것은 경쟁이 다른 부정적 특성들이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사활적 경쟁으로 인해 개인주의가 극심해졌고, 일상은 사막이 되었으며 생활리듬은 살인적인 속도를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다. 한국사회는 오만과 모멸의 구조 (고려대 김우창 교수)
- 고려대 김우창 교수는 한국사회는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있다고 규정하였다.
- 이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턱없이 오만하고, 패자는 너무나 깊은 모멸감을 내면화하고 살아가고 있기에 한국은 한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서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기가 너무 힘든사회라고 말함.
- 지금 우리는 교육, 주거, 의료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이라도 지켜주는 정부가 필요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시장에 맡겨두고, 세계 최저의 복지재정 지출을 하고 있다
-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정치가 가능했던 독일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시장경제를 반대했고, 대학까지 무상교육, 생활비를 매월 지급하고 있다.
라. 경쟁은 야만의 다른 이름 ( 독일의 태오도어 아도르노)
- 오늘날 독일 교육의 초석을 놓은 1970년대 교육개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태오도어 아도르노는 경쟁에서 야만의 징후를 본다. 경쟁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교육에 반하는 원리로서 인간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결코 경쟁 본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 그는 경쟁을 통한 발전이란 우리 교육 체제가 물들어 있는 신호들 중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경쟁을 의심의 여지없는 야만 이라고 힐난한다. 경쟁에 반대하는 아도르노의 교육 이념이 실현됨에 따라 독일 학교에서 경쟁은 야만 행위로서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우열을 가리는 석차는 사라졌다.
- 학생은 서로 다른 취향과 재능을 지닌 개성적 존재 이지 우열을 나누어 일렬로 세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어 어떤 일에 종사하던 모두가 당당하다. 반면에 한국에선 열등감이 없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판검사 의사, 교수도 예외가 아니다. 끝없는 경쟁의 수직적 위계 속에서 언제나 누군가가 내 위에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오만과 모멸의 구조는 바로 여기서 생겨난 것이다. 교육 혁명은 경쟁 교육혁명의 폐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소양과 재능을 발견하고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다.
- 모든 인간을 획일화된 기준에 맞춰, 줄 세우고 수직적 위계질서에 배치하는 것이 교육일 수 없다. 열등감으로 조직된 사회는 행복할 수도, 정의로울 수도 없다. 어느 선진국에도 우리처럼 가혹한 경쟁이 어린 학생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곳은 없다. 경쟁 교육이라는 야만의 시대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경쟁 교육에서 연대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이다.
라. 문제의식이 없는 한국정치권
- 대한민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여전히 헬조선인 이유는 한국 사회가 문제 의식을 못 느끼고있기 떄문이다.
지금의 정부여당은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으며, 정부와 정치인보다 나라살림 걱정을 국민이 더 하는 이상한 의식구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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