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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政治)를 정리(整理)해 드립니다
3. 대한민국 국민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3-2. 정치적인 이유

3-2-1. 쿠데타와 정치보복에 취약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by organizer53 2023. 7. 26.

 

1.  쿠데타에 취약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  민주화 운동은  수구독재세력의  쿠데타 집권의 기회 

 

  • 그동안 국민의 민주화 운동으로 변혁을 이룬 게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 세 번 있었지만 세 번 모두 역주행으로 끝났다. 
  • 4·19 혁명은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낳았고, 5·18 민주화 운동은 전두환 군부정권을 만들었고, 6·10 민주항쟁은 노태우 군부정권으로 이어졌다. 
  • 이번 2017년 촛불혁명으로 이루어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 시, 기무사령부를 통해 계엄선포를 기획했던 것이 발각되었던 것은 또 역주행하는 우리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될 뻔한 사건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쿠데타에 너무 취약한 민주주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가.  박정희의 5∙16 쿠데타

 

나.  전두환, 노태우의 12.12 군사 반란

 

다.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준비 사건

  • 2018년 6월 6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군인권센터는 지난해 3월 기무사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을 폭로했다. 
  • 이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박 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될 경우 위수령 발령→계엄령 선포를 계획했고, 위수령하에서 군이 폭행을 당했거나 진압할 수단이 없을 땐 시위대를 향해 발포할 수 있도록 했다. 
  • 또 계엄령 발동 뒤, 군이 정부부처·수사기관을 장악하고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제하는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마련했다.
  •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는 군사에 관한 정보 수집 및 군사 보안, 방첩, 범죄 수사를 목적으로 하는 국방부 직할 수사정보기관이다. 하지만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정권 보위 기구로서 악명을 떨쳐왔다. 기무사의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유족 간 분열을 조장하고 민심을 왜곡하기 위해 치밀한 공작을 벌인 것이 지난해 조사에서 드러났다. 
  •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정치 공작’은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중에 계엄령 선포까지 기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연 임무에서 벗어나 ‘정권 보위 기구’로 전락한 기무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함께 해체에 가까운 개혁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  대통령의 수난 (정치 보복)

 

  •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은 모두 옥고를 치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과 주변사람들의 비리를 캐는 데 권력의 힘을 투사한다면 어떤 사람이 버텨낼 수 있을까.
  • 명백한 개인비리는 당연히 처벌대상이 돼야겠지만 정치판에서 벌어진 잘못은 정치적인 승부 자체로 마무리 짓는 것이 좋다. 그래야 대통령마다 예외 없이 불행해지는 ‘대통령의 비극’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  이승만 :  4·19 혁명으로 하야, 하와이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침

 

  •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광복 이후 11년 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내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 농지개혁, 초등교육 의무교육,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대대적인 학교 건립, 평화선 선포 등과 같은 족적을 남겼다. 
  • 그러나 동시에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독재 권력을 추구해 반발을 샀고, 결국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계기가 돼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나.  박정희 : 시해당함으로 18년 장기집권의 막을 내림

  •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 18년간 장기집권했지만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당함으로 장기집권의 막을 내림

다.  전두환(12대), 노태우(13대) : 처음으로 구속, 사형 선고까지 받다

  • 노태우(13대), 전두환(12대) : 육사 시절부터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1979년 10.26 사건 이후 `12.12 군부 쿠데타', 1980년 5월 `5.18 광주민주항쟁 무력진압' 등 총칼을 앞세워 차례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 하지만 후임인 김영삼 정권 시절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년가량 복역하다 사면조치로 풀려났다. 
  •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향한 검찰 수사는 비자금 조성 의혹 제기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민주당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촉발된 비자금 의혹 수사는 곧바로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 항쟁 관련 수사로까지 확대됐다.
  • 전두환 씨는 반란·내란수괴·내란목적살인·상관살해미수죄 외에 뇌물죄로 기소돼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천205억 원을 선고받았다.
  • 전두환 씨와 함께 반란·내란중요임무종사·상관살해미수죄 외에 뇌물죄로 기소된 노태우 씨는 징역 17년과 추징금 2천628억 원을 선고받았다. 두 전직 대통령이 기업으로부터 조성한 비자금 중 총 4천833억 원을 뇌물로 본 것이다.
  • 전두환 씨는 당시 비자금 조성 관련 재판에서 "많은 기업들은 돈을 냄으로써 정치에 안정을 가져올 수 있고 정치가 안정돼야 사업도 제대로 된다고 인식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대가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법원은 포괄적 뇌물죄 개념을 들어 대가성이 없었다는 주장을 배척했다.
  • 기업체들이 기업운영의 편의나 정책 결정상 선처 명목으로 대통령에게 제공한 금품은 대통령이 국정 수행과정에서 갖는 포괄적 지위에 비춰볼 때 명백한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을 갖는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라.  김영삼(14대) : 경제위기로 검찰 조사를 받다

  • 한국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에 휩쓸리면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검찰이 1998년 4월 정부 관료들을 상대로 상황을 이렇게 방치한 책임(직무유기)을 묻기 시작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도 참고인으로 서면 조사를 받았다.
  •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족 측근 비리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차남 김현철 씨는 아버지 재임 기간인 1997년 한보 특혜 대출 비리에 연루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마.  김대중(15대): 모든 아들이 비리에 연루되다

  •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한국 민주화 운동의 거목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슬하의 아들 셋이 모두 권력형 비리에 얽히는 오점을 남겼다.
  • 장남인 김홍일 씨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인사청탁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2006년 의원식을 상실했다.
  • 차남인 김홍업 씨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현대와 삼성으로부터 약 25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다.
  • 삼남인 김홍걸 씨도 스포츠토토 사업자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바.  퇴임 후의 삶이 가장 비극적이었던 대통령 노무현(제16대)

  • 재임 중 보수층과 보수언론의 집중적인 견제와 비난을 받았고, 의회 주도의 탄핵의 위기를 겨우 모면했으며, 퇴임 이후 봉화마을로 내려가 평화로운 인생 말년을 희망했지만, 차기정권의 표적수사로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고향땅 뒷산에서 투신 서거했다 
  • 제16대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개혁과 높은 도덕성을 표방하며 취임했지만 퇴임 후 검찰 수사로 수난을 겪었다. 노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2008년 11월 국세청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탈세 혐의로 고발하며 수면 위에 올랐다. 검찰은 2008년 12월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15억 원을 빌려준 내용이 담겨 있는 차용증을 확보하며 수사를 본격 확대했다.
  • 이후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2009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 씨에 대한 소환조사(2009년 4월)를 거쳐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을 검찰청에 소환해 조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 씨가 박연차 회장에게 수십만 달러를 추가로 수수한 정황이 드러났다.
  • 당시 검찰은 수사 내용을 꾸준히 언론에 흘리고 소환 조사 이후 3주 넘게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던 원세훈이 수장을 맡고 있던 국가정보원은 이때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고가의 명품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는 루머를 퍼뜨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 결국 노 전 대통령은 5월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노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최측근이었으나 노 대통령 퇴임 이후 정치와는 선을 긋고 살아왔던 문재인 변호사를 다시 정치로 뛰어들게 만들었고, 진보파를 다시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  이명박(제17대) : 선거 당시부터 따라다니던 의혹에 결국 붙잡히다

  • BBK를 비롯한 일련의 금융, 투자회사들이 연루된 주가조작 사건의 배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는 의혹은 선거 기간 내내 제기됐다가 특검이 임명돼 당선인 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받는 진풍경을 빚기도 했다. 특검은 당선인에게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같은 보수파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채 마치지도 못하고 파면되고 진보파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의 의혹은 새로운 의혹과 함께 증폭되기 시작했다.
  • 중견 자동차 부품 제조기업인 다스는 BBK에 거금을 투자한 전력으로 이전부터 꾸준한 의혹의 대상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개된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증언들이 추가로 확보됐다.
  • 게다가 이 과정에서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다스의 BBK 투자금 회수를 위한    해외 소송비용으로 15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제공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이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은 새로운 차원으로 확대됐다.
  •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소송비를 대납했으며 그 대가로 당시 탈세,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특별사면해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전직 대통령 신분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전격 구속이 결정되었고, 재판에서 징역 17년, 벌금 130억이 확정되었다.

아.  박근혜(제18대) : 사상 최초로 현직에서 탄핵당한 대통령

  •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으로 2017년 3월 탄핵됐다. 취임 당시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부녀가 모두 대통령에 취임한 ‘부녀 대통령’이란 기록을 세웠지만, 최초의 탄핵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서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 원을 확정받았다. 

      출처 : BBC 코리아 2018년 3월 23일